리우 올림픽이 한창인 지난달 18일 이메일을 한 통을 받았다. “뭘 좀 알고 기사쓰쇼. 기자의 최소한 양심을 가지고.” 이 내용이 전부였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지적도 없었다.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에 통역도 팀 닥터도 없었다는 기사 때문에 보낸 항의 메일로 보여졌다.
발신인 메일 주소를 보니 ‘코치(coach)’라는 단어가 들어간 익숙한 메일 주소였다. 대한배구협회 고위 임원 A씨의 이메일 주소와 도메인만 다르고 나머지 부분은 일치했다.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 만에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A씨는 머뭇머뭇하다 자신이 보낸 이메일임을 시인했다. 기사의 어떤 내용이 사실과 다르냐는 질문에 협회 고위 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일본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되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대표팀은 팀 닥터도 없이 1명의 전력 분석원과 1명의 트레이너만이 선수들 지원을 했지만 일본은 전력 분석원 2명에 보조 분석원 3명 등 선수들 지원 스태프가 10여명에 이른다는 기사 내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놓고 겨룰 만큼 라이벌 관계인 한국과 일본을 왜 비교를 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는 “일본은 정부도, 팬도 여자배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우리보다 잘 살지 않냐”라고 항변했다. 결국 일본 여자배구는 재정적인 지원이 한국 배구보다는 좋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어느 나라와 비교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A씨는 대답을 피했다.
뒤 이어진 A씨의 말은 충격이었다. “일부 선수들은 ‘프로배구팀을 관리하는 한국배구연맹이 대표팀도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한배구협회 지원이 허술하다”고 지적하자 A씨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오히려 맞장구를 쳤다. 진심이냐는 질문에 A씨는 “진심이다. 선수들이 좋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선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모든 답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이 났다. ‘돈’ 앞에서 그는 대한배구협회의 중요한 본분이 대표팀 관리인 것을 망각한 것처럼 느껴졌다. ‘돈’ 없는 배구협회가 된 것은 협회 임원들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 역시 잊은 것 같았다.
대한배구협회장에 새롭게 취임한 서병문 회장이 최근 부회장 5명과 이사 19명, 감사 2명 등 총 27명의 새 집행부를 구성했다. 서 회장은 지난달 29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자배구 대표팀 지원 미비에 대해 사과하고 “집행부의 인선이 마무리 되는대로 새롭게 판을 짜 조직을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집행부 가운데는 A씨를 포함해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인사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배구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A씨와의 대화 경험으로 봤을 때 그런 의구심이 기우만은 아닐 것 같다. “지금까지 협회가 걸어왔던 길이 분명 잘못 걸어온 것이 맞다”며 강한 개혁 의지를 보인 서병문 회장이 과연 A씨와 같은 인사들과 어떤 개혁을 펼쳐 보일지 이번 임원 구성을 보며 기대보다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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