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전문 보증기관 신보
정부에 떠밀려 대기업 회사채 보증
애꿎은 중소ㆍ중견기업 피해 우려
정부, 내년까지 800억원 지원키로
“부실 대기업에 혈세” 비판 목소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대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이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에 보증을 서준 신용보증기금이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따른 피해는 애꿎은 중소ㆍ중견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소ㆍ중견기업 피해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예산 투입을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실 대기업에 혈세를 퍼붓는 것과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신보의 시장안정계정의 운용 배수(보증잔액/기본재산)는 215배까지 치솟았다. 가지고 있는 돈의 200배 이상의 금액에 대해 보증을 서줬다는 얘기다. 신보 등 보증기관이 통상 5~10배 내외로 관리하는 걸 감안하면, 감당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가깝다.
신보는 중소ㆍ중견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이들이 발행한 회사채에 지급보증을 서주는 유동화회사보증(P-CBO) 제도를 2003년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가 2013년 7월 회사채 지급 보증 대상에 해운ㆍ조선ㆍ건설 등 경기민감 업종 대기업을 포함시키면서 지원대상이 넓어졌다. 그러면서 신보는 원래부터 있던 중견ㆍ중소기업 보증은 일반유동화계정, 경기민감 업종 대기업을 포함하는 새로운 보증은 시장안정계정으로 나누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장안정계정을 통해 회사채 지급 보증을 받은 대기업은 한진해운(지난해 말 보증 규모 4,456억원) 현대상선(4,944억원) 한라그룹(1,875억원) 동부제철(1,854억원) 대성산업(1,590억원) 등 다섯 곳. 문제는 이들 기업이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채권단 자율협약,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등 강제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면서 신보가 부실을 대비해 의무적으로 쌓는 충당금이 올 6월말 기준 1조4,586억원까지 불어났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5,667억원에 달했던 시장안정계정의 기본재산은 올 6월말 280억원으로 확 쪼그라들었고, 그 결과 운용배수가 작년 말 11배에서 6월말 215배로 솟구친 것이다. 한진해운이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신보가 앞으로 추가 충당금을 쌓을 경우 이 배수는 더욱 치솟을 게 확실시된다.
시장안정계정의 급격한 부실화로 피해를 보는 곳은 다름 아닌 시장안정계정을 이용하고 있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이다. 이 계정이 부실화하면 이들 중소ㆍ중견기업의 차환(보증 연장)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에 대해 신보는 “일반유동화계정에 있는 자금으로 이들 기업의 차환을 지원할 것”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이렇게 되면, 부실이 일반유동화계정으로 옮겨 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유동화계정을 이용하는 중소ㆍ중견기업 수천 곳에까지 여파가 미치게 된다.
정부는 부랴부랴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기재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500억원을 지원하는 한편, 내년에도 3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등 앞으로 수년 간 일반유동화계정에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와 신보는 한국은행에도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구조조정을 받는 대기업에 대한 혈세 투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보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ㆍ중견기업 전문 보증기관인 신보의 등을 떠밀어 부실 대기업을 지원한 탓에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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