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9월 13일
로알드 달(Roald Dahl)은 소설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사연들을 남겼다. 그의 삶은 꽤나 다이내믹했고, 영혼도 순치되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발랄했던 건, 좀 프로이트 식이지만, 삶과 이성을 매개하던 꿈이었을지 모른다.
영국 웨일스 랜더프의 주교좌성당학교에 다니던 8살 때, 그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 가게 사탕 병 속에 죽은 쥐를 몰래 넣어 뒀다가 들켜 교장에게 매를 맞는다. 훗날 자서전에 “가게 주인은 비열하고 역겨운 노파였다”고 썼다니 그에겐 나름의 사연이 있었을 테고, 매를 맞고도 납작 엎드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저런 일 탓에 그는 이내 브리스톨 해협 너머 웨스턴 슈퍼메어의 성베드로 기숙학교로 전학을 갔다. 훨씬 엄한 학교였다.
노르웨이 이민자 부모는 아이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받게 하려는 열망이 있었고, 3살 무렵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도 어머니가 노르웨이로 돌아가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보다 학교를 보내느라 어머니가 겪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걸 알았던 듯하다. 매주 집에 편지를 쓰면서도 제 어려움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상급학교는 더 억압적이었다. 체벌과 구타, 잔혹행위…. 그는 평생 학교와 교사를 경멸했고, 구타를 일삼던 한 성직자 교사가 주교가 되는 걸 본 뒤 종교도 의심하게 된다. 그 무렵 한 교사가 달의 리포트를 두고 “단어들을 이렇게 정반대 의미로, 고집스럽게 쓰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고 쓴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저 우울한 일상에서 전복과 반전의 이야기를, 상상과 꿈속에서 찾고 키워갔을 듯하다. 훗날 달은 “마법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 마법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법의 완성은 음식, 특히 어울려 즐겨는 만찬이었다. 만년의 그는 3대 대가족을 이뤄 한집서 살며 마법 같은 삶을 누렸고, 요리법과 일화를 책으로 썼다. 한 챕터가 온통 초콜릿이야기였는데, 초콜릿 광이던 그는 교사들이 왕과 여왕은 그만 괴롭히고 ‘캐드버리(Cadbury, 과자회사)’가 언제 어떤 초콜릿을 출시했는지 가르쳐야 한다고, “만일 내가 교장이면 역사 선생 대신 초콜릿 선생을 채용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100년 전 오늘 태어나, 1990년 11월 연필과 와인과 초콜릿과 함께 묻혔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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