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항법장치(GPS) 신호로 시민 수백만명의 위치를 추적하고 무인 드론을 띄워 실시간 감시에 나선다면….’ 문득 ‘빅 브라더’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9월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상황이 다르다. 이슬람 최대 순례 기념일 하지마다 최소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정부의 IT 안전 대책이 십분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연례 하지 순례 이틀째에 접어든 11일(현지시간) 180만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이슬람교 총본산인 메카와 인근 아라파트산에 운집했다. 하지 기간 동안 메카를 찾는 순례자가 매해 200만명 가량인 점을 감안할 때 과거와 큰 차이 없는 규모임에도 올해에는 아직까지 사망ㆍ부상 사고가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해 메카 미나 계곡 인근에서 발생한 압사사고로 2,600여명이 사망하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순례객이 몰리는 주요 장소에 폐쇄회로(CC)TV 1,000여대를 설치하는 등 전방위 감시 체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의 안전 대책 중에서 IT 장비 및 서비스를 활용한 프로그램은 이목을 끌고 있다. 안전 당국은 아라파트산과 주요 도로에 24시간 드론을 가동해 특정 장소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현장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실종 사고를 대비해 순례객들에게 개인 전자팔찌도 지급한다. 팔찌엔 GPS 칩과 더불어 여권번호와 주소, 의료 기록 등 개인 정보가 저장돼 중앙 통제실에서 실시간 위치 파악이 가능하다. 사우디 성지순례 당국은 생애 첫 순례에 나선 이슬람교 신자들이 혼란에 빠질 경우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고 팔찌를 통해 기도 시간 알림과 다국어 순례 안내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정부 당국뿐 아니라 일생일대의 여정에 오른 순례객들도 안전한 하지를 보내기 위해 각종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정부 제공의 전자팔찌와 유사하면서도 길 안내, 음성 통화 등을 제공하는 앱 연계 스마트밴드가 순례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순례자들의 필수 코스인 메카 그랜드모스크의 경우 방문객을 위한 무선 와이파이가 제공되기 때문에 IT서비스 이용이 편해진 점도 있다.
이외에 하지 특수를 악용한 바가지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FP는 이에 “올해 순례객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안전 문제를 신경 쓰고 있다”며 “순례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앱들이 출시되면서 하지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고 분석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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