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관계자가 북한 핵 위협 대응 방안으로 “평양의 일정구역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다. 그는 “핵무기 사용 징후 등이 나타났을 때 전쟁 지휘부가 숨을 만한 구역을 초토화하는 것”이라며 “김정은과 지휘부가 ‘핵 단추’를 누르기 전에 반경 수㎞를 지도상에서 완전히 들어내는 개념”이라고 부연했다. 국방부가 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와 함께 대북 억지력의 ‘3축 체계’의 하나로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을 처음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우리 군이 받았을 충격과 위기의식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평양을 사라지게 하겠다”는 둥 극히 호전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군 수뇌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핵 위협에 다각도의 체계적 대응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군이 먼저 나서서 전쟁분위기를 띄우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행동을 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 더욱이 ‘대량응징보복’ 작전이 미군의 전폭적 지원 없이 우리 자체 능력만으로는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런 식의 공세는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것이라는 오해만 살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감정적ㆍ즉흥적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상황 점검회의에서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평소 절제된 박 대통령의 화법치고는 이례적인 표현이다.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실제 정상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냉정해야 할 군 최고통수권자가 푸념 섞인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뉴욕타임스가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다’라고 한 것과도 대비된다.
정치권, 특히 여당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독자 핵무장론’ ‘미군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마찬가지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독자 핵무장으로 북핵에 맞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속 시원하게 들릴지 모르나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제 핵 비확산의 근간인 NPT 체제를 깨뜨리는 데서 오는 파장은 동북아의 불안한 군사대치 상황, 미국과의 동맹관계, 우리의 경제여건 등을 둘러볼 때 불가능한 선택이다. 전술핵 재배치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실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여당 지도부가 걸핏하면 이에 언급하는 것은 국론 혼란과 분열만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오해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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