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경쟁자였다. 두 소년은 YG엔터테인먼트(YG) 소속 아이돌로 데뷔를 위해 한 명은 붙고 한 명은 떨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13년 방송된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윈’에서 우승한 소년은 위너란 그룹의 메인 래퍼로 2014년 데뷔해 빛을 봤다. 떨어진 다른 소년은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의 간택으로 운 좋게 또 다른 그룹 아이콘의 메인 래퍼 자리를 꿰찼다. 숙명의 경쟁자였던 두 래퍼가 짝을 이뤄 지난 9일 신곡을 냈다. 위너의 송민호(23)와 아이콘의 바비(21)다.
어제의 ‘적’에서 오늘의 ‘동료’가 된 두 래퍼를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 YG 사옥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가 우리의 듀오 프로젝트를 기획해 함께 하게 됐다”며 “곡 작업을 하며 경쟁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바비는 랩을 할 때 확실히 에너지가 남달라요. 섹시하다랄까요? 랩 전달 능력도 좋고요. 처음엔 저와 랩 톤이 달라 많이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작업을 해 보니 잘 맞더라고요.”(송민호)
“민호 형은 가사를 센스있게 잘 써요. 제가 가사를 쓸 때 좀 어렵게 써 고민이었는데, 민호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민호 형은 랩을 할 때 톤의 변화가 자유롭고 다양해 곡의 맛을 잘 살리더라고요.”(바비)
송민호와 바비가 같이 작사, 작곡해 최근 공개한 노래는 ‘빨리 전화해’와 ‘붐벼’다. ‘빨리 전화해’는 일렉트로닉 비트가 경쾌해 가볍게 몸을 흔들기 좋고, ‘붐벼’는 강렬한 비트에 두 사람의 랩이 묵직하게 깔려 정통 힙합의 느낌을 준다.

비트 외 힙합의 또 다른 매력은 재치 있는 가사다. ‘빨리 전화해’에서 송민호는 “청춘의 베개에 나는 쉰내”라고 당차게 랩을 한다. ‘젊어서 화끈하게 놀자’는 게 가사의 큰 줄기인데, 그렇지 못한 그의 현실을 담았다고. 송민호는 “한창 놀아야 하는 데 스케줄도 많고 여러 여건 상 나가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집에서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까란 상상과 대리만족을 하면서 쓴 노래”라며 웃었다. ‘붐벼’라는 곡에선 바비가 “간지(멋) 챙겨 라이크 홍진경”이라고 랩을 해 웃음을 준다. 바비는 노랫말을 쓴 배경에 대해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다가 홍진경 선배님이 춤을 추는 걸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거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붐벼’는 자유롭게 즐기는 청춘의 화끈한 모습을 담은 노래다.
둘 다 YG란 ‘포장지’를 벗겨도 힙합신에선 주목 받던 래퍼였다. 송민호는 2015년 ‘쇼미더머니4’에서 준우승을 했고, 바비는 한 해 앞서 Mnet ‘쇼미더머니3’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랩하면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두 래퍼지만, 이번 듀오 작업을 하면서 ‘퇴짜’도 많이 맞았다. 양현석 프로듀서에게 “곡 수정 지시를 여러 번 받아서”다. 각자 써 놨던 곡을 토대로 두 사람은 지난 7월부터 듀오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고, 10여 곡 중에 두 곡만 낼 수 있었다.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님은 정말 꼼꼼해요. 세세하게 가사 한 단어까지 보며 ‘이 부분 수정해라’고 조언하셨죠. 이번에 나온 곡 중에 한 곡도 한 번에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님께 ‘오케이’ 란 허락을 받은 곡이 없어요. 제 딴엔 정말 잘 썼다고 하는 가사를 바꾸라고 해서 너무 아까운 나머지 어미만 살짝 바꾸는 식으로 해서 고비를 넘기곤 했죠, 하하하.”(송민호)
송민호와 바비의 듀오 프로젝트의 이름은 ‘몹’(MOBB)이다. 송민호의 영어 이름 ‘MINO’와 바비의 ‘BOBBY’의 일부 알파벳을 섞어 지었다. 힙합신에서 크루(동료)라는 뜻으로 쓰이는 ‘mob’과 발음이 같은 점도 작용했다. 두 사람은 11일 SBS 음악프로그램 ‘인기가요’에서 ‘빨리 전화해’의 첫 무대를 선보였는데 “데뷔 전부터 서로 한 무대에 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뤄진 것 같았다”며 의미를 뒀다.

두 사람은 “이제 마냥 언더그라운드에만 있는 게 아니니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게 숙제”라고 했다. 데뷔 2년 차 남짓의 신인 래퍼는 당찼다. ‘몹’이 래퍼 지드래곤과 톱의 듀오 프로젝트와 닮았다는 의견에 대해 바비는 “고마운 말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따라가며 제2의 누군가로 살고 싶진 않다”는 소신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도전해 보고 싶은 랩 스타일도 달랐다.
“전 무거운 노래보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치어 업’ 같이 경쾌한 노래를 한 번 내고 싶어요. 다들 살기 힘드니 힘 내자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주고, 저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송민호)
“무엇인가를 책임져야 하는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코어(센) 힙합’을 좋아하기도 했고, 메시지도 무거운 랩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바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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