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만 나면 술 마시고 춤을 추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외모만 보면 ‘여자 신동엽’이란 별명에 ‘왜?’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잠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남학생에게 “하려던 거 해”라며 키스를 ‘적극’ 권하는 모습은 왈가닥 그 자체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센 척해 보이지만, 실은 연애 경험이 전무하고 이론만 빠삭한 ‘헛똑똑이’다.
이 까다로운 역할을 배우 박은빈(24)이 해냈다. 그는 지난달 27일 종영한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음담패설까지 줄줄 내뱉어야 하는 여대생 송지원을 연기하며 자신을 과감히 버렸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박은빈을 만났다.
‘방송을 볼 때마다 춤을 추더라’고 운을 떼니 “송지원을 연기하면서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마음껏 뽐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얼마나 작정하고 연기했으면 “촬영할 때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고 했다.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5명의 여대생들 중 단연 돋보여야 하는 캐릭터였다. ‘연애바보’ 예은(한승연), ‘외모담당’ 이나(류화영), ‘소심이’ 은재(박혜수) 그리고 ‘생계형 철의 여인’ 진명(한예리)과 비교해 ‘여자 신동엽’이야말로 스스로를 내려놔야 나올 수 있는 연기다.
박은빈은 유쾌 발랄 명랑 등 온갖 긍정 에너지를 떠올릴 만한 여대생을 그리기 위해 외모부터 바꿨다. 오래 고수해 온 긴 생머리를 귀밑까지 자른 단발로 상큼한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의상은 과감하게 스타일리스트에게 권한을 넘겼다. “평소에 시도하기에 두려웠던, 과하다고 생각했던 의상들을 입어봤죠.” 알록달록한 스커트나 수술이 많이 달린 티셔츠 등을 활용해 “보헤미안이나 집시 스타일”을 귀엽게 표현하는 데 힘을 줬다.
그런데 박은빈은 이 모든 걸 처음 해 본다고 했다. “실제로는 술을 못 마셔요. 술 맛도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긴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고요. 말도 많고 친구도 많은 송지원과 딱 반대랄까요?”


하지만 그는 드라마에서 “귀신은 음, 남근은 양이다. 우리 집안 곳곳에 남근을!”이라며 귀신을 내쫓자고 하고, “할 수 없다. 내 ‘직박구리’(파일)를 여는 수밖에”라며 ‘야동’을 못 본 친구를 위해 선뜻 적선(?)도 하는 대찬 연기를 선보였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아마도 SBS ‘백야 3.98’(1998)을 시작으로 KBS ‘명성황후’(2001) ‘무인시대’ (2003) ‘천추태후’(2009), MBC ‘태왕사신기’(2007) ‘선덕여왕’(2009) 등을 통해 다져온 18년의 내공일 터. 아역배우부터 카랑카랑하고 똑 부러진 목소리와 야무진 외모는 단연 눈에 띄었다. 아홉 살 때 ‘명성황후’에서 순종의 비, 순명황후를 맡아 온화한 성품을 연기했고, ‘비밀의 문’(2014)에선 혜경궁 홍씨로 지적인 자태를 뽐냈다.
“어릴 때 엄마는 제가 (연기를) 그만두기를 원했어요. 하고 싶은 일인데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더 착하고 준비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죠. 새벽에 엄마가 깨우기 전에 일어났고, 밤 새는 촬영장에선 졸지 않으려고 했어요. 촬영장은 제겐 즐거운 놀이터였거든요.”
어렸지만 연기에 대한 집념이 확고했다. ‘명성황후’를 촬영할 때 만난 순명황후의 후손 덕분이다. 서울의 한 고궁에서 촬영을 하던 그에게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어머니”라며 눈물을 보였다. 부축을 받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순명황후의 자손이셨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여서 충격을 받았죠. 하지만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한다는 자체가 어떤 분들에게는 큰 의미겠구나 생각했어요. 아마 그 때부터 마음 속에 배우를 담아 둔 것 같아요.”
20대 박은빈에게 청춘은 어떤 의미일까.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시기, 그래서 치열한 고민이 이어지는 시기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문제가 계속 저를 괴롭히네요.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확실할 수 없는데, 연기인들 어떻겠어요?” 자신을 찬찬히 알아가고 있다는 그의 30, 40대 모습이 궁금해진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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