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결(왼쪽)과 안신애(오른쪽)가 퍼팅 연습 그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ING 생명 챔피언스 트로피 공식 페이스북.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지난해 10월 LPGA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때 얘기다. 대회 장소였던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오션코스 퍼팅 연습 그린 주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쪽에선 당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1인자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가 노란 모자를 쓴 팬클럽 회원들을 몰고 다녔고, 다른 한쪽에선 '골프여제' 박인비(28ㆍKB금융그룹)가 엄청난 갤러리들을 끌어 모았다.
렉시 톰슨(21)과 폴라 크리머(30ㆍ미국) 등 해외 스타들과 리디아 고(19ㆍ뉴질랜드), 앨리슨 리(21ㆍ미국) 등 동포 스타들도 많은 수의 갤러리들을 거느렸다. 크리머의 퍼트 연습을 지켜보다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한국에 와서 치니 기분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크리머는 "코스도 아름답지만, 생각보다 팬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이날 이미향(23ㆍKB금융그룹)과 앨리슨 리 등은 연습하랴, 갤러리들에게 사인하랴 정신이 없었다. 이미향은 기자가 말을 걸자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낼 테니 좋은 기사 많이 써주세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퍼팅 그린은 선수와 갤러리, 취재진이 아주 가까이서 공존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축구 경기장 등에선 비싼 입장료를 내더라도 팬들이 선수 얼굴의 모공까지 보이는 공간에서 같이 호흡하기 어렵다. 하지만 퍼팅 그린에선 팔만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선수들의 퍼트를 지켜볼 수 있다. 선수들은 연습을 하면서 팬들이 속삭이는 말까지 들을 수 있다.
선수들에게 퍼팅 그린은 보이지 않는 경쟁의 장(場)이다. 올림픽 육상 단거리 100m 출발 신호 직전 스타디움이 적막에 휩싸이는 것처럼 라운드 전 퍼팅 그린에도 전운이 감돈다. 선수들은 퍼트 하나에도 신경을 집중한다. 라운드 후엔 경기를 복기하며 다음 라운드를 기약하는 장소가 된다. 김보경(30ㆍ요진건설)은 경기 후 퍼팅 그린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선수로 유명하다. 지난 7월 카이도 MBC 플러스 여자오픈 때 그는 경기 후 아버지 캐디 김정원(61)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랫동안 퍼트 연습을 했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퍼팅 그린을 지켰다.
물론 경쟁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긴장감이 흐르기 때문에 그것을 풀려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 만큼 선수들은 퍼팅 그린에서 사적인 농담도 한다. '장타여왕' 박성현(23ㆍ넵스)은 5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정민(24ㆍBC카드) 언니와 친하다"고 했다. 이들은 경기 전 퍼팅 그린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퍼팅 그린을 지켜보고 있으면 선수들간 친분 관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과거 만난 한 티칭 프로는 "골프는 결국 퍼트 싸움이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골프 전설' 윌리 파크 주니어는 "퍼트가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KLPGA 평균 퍼팅 5걸에는 올 시즌 1승 이상을 한 선수가 3명이나 있다. 조정민(29.53개ㆍ2위)과 이승현(29.69개ㆍ3위), 고진영(29.80개ㆍ4위)가 그들이다. 다승 1위(7승) 박성현 조차 본지에 "퍼팅이 좋아야 타수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우승한 대회에선 퍼트가 좋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퍼트의 중요성이 여전한 만큼 선수들도 퍼팅 그린에서 퍼트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다. 경쟁과 친목, 소통이 공존한 퍼팅 그린을 지켜보는 것도 골프의 또 다른 묘미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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