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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필수 아닌 선택…삶에 맞춰 변화하는 셰어하우스

입력
2016.09.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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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 근처에 자리잡은 셰어하우스 마이크로하우징. 입주자가 소통과 공유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SSD아키텍처 제공
석촌호수 근처에 자리잡은 셰어하우스 마이크로하우징. 입주자가 소통과 공유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SSD아키텍처 제공

자기 방은 따로 쓰고 거실, 식당, 화장실은 공유하는 셰어하우스는 주거방식으로만 보면 이전부터 있던 형태다. 하숙집 학생들은 제 방에 박혀 있다가 밥 먹으러 마루로 나왔고, 고시원의 청춘들은 공동부엌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뒤 한 뼘짜리 방으로 향했다. 지금 건축계 가장 뜨거운 화두인 ‘공유’에 저 셰어하우스가 포함되려면 거주자의 자발성이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전용공간을 줄이는 대신 공용공간을 늘려 삶의 질을 높이고, 동거의 다사다난함을 즐거이 누리겠다는 자발성 없이는 셰어하우스는 업그레이드 된 고시원일뿐이다.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 마이크로하우징은 1인 가구 여덟 세대를 위한 셰어하우스다. 지하에 카페 겸 극장, 2층엔 갤러리를 갖춘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3~6층에 배치된 방 하나의 크기는 12㎡(약 4평). 도시형생활주택의 법정 최소면적(2013년 6월 14㎡로 조정)이다. 이 집은 “내 몸 하나 뉘일 공간” 외엔 필요 없다고 믿는 한 60대 치과의사의 의뢰로 지어졌다.

우리 발코니에서 만나요~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발코니. 이곳을 통해 옆 방 사람과 선택적 소통을 누릴 수 있다. SSD아키텍처 제공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발코니. 이곳을 통해 옆 방 사람과 선택적 소통을 누릴 수 있다. SSD아키텍처 제공

“나이가 더 들면 아주 작은 집에서 사는 게 소원입니다. 동네식당이 내 부엌이고 24시간 편의점이 내 냉장고죠. 집은 나 하나 엉덩이 붙일 공간만 있으면 돼요.”

그러나 실제로 엉덩이 하나 붙일 수 있는 집들의 주거환경은 처참하다. 건축주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최소한의 도시형 생활주택을 의뢰했고, 박진희 건축가(SSD아키텍처)는 건축주의 취향이 한 전형으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가족중심사회에서 비혼이나 이혼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그들을 위한 안정적인 주거형태가 없어요. 지금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전부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하죠.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기 전에 잠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1인가구가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주택 전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가의 첫 번째 고민은 ‘어떻게 하면 거주자들에게 공유에 대한 선택권을 줄 것인가’였다. 언론에 흔히 비치는 셰어하우스의 풍경은 거주자들이 거실에서 훈훈하게 대화하는 모습이지만, 그 소통이 선택사항이 아닐 때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건축가는 모든 방에 주방시설과 샤워기 딸린 화장실을 설치해 굳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기본적인 필요가 해결되도록 했다. “개인 공간에 대한 욕구는 프라이버시 때문이에요. 클 필요가 없는 거죠. 방에서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기본 욕구를 충족하고 그 이상을 원하면 밖으로 나오면 되는 거예요.”

마이크로하우징의 방 내부. 모든 방에 화장실과 주방시설을 설치했다. 벽 위쪽에 낸 고창으로 햇볕과 바람이 들어온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의 방 내부. 모든 방에 화장실과 주방시설을 설치했다. 벽 위쪽에 낸 고창으로 햇볕과 바람이 들어온다. SSD아키텍처 제공
넓은 복도는 입주자들의 모임 공간으로도 쓸 수 있다. 의자를 가지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면 된다. SSD아키텍처 제공.
넓은 복도는 입주자들의 모임 공간으로도 쓸 수 있다. 의자를 가지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면 된다. SSD아키텍처 제공.

4평 남짓한 공간에서 최대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벽 위쪽에 사방으로 고창(高窓)을 내 햇볕과 바람을 끌어 들였다. 비상계단에도 창문을 만들어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방에서도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이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발코니로 나간다.

1층에 커뮤니티 공간을 두는 셰어하우스들과 달리 마이크로하우징의 만남은 발코니에서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건축가는 고시원처럼 방들을 다닥다닥 붙이지 않고 발코니를 통해 다리처럼 각 방을 연결했다. 거주자 성향에 따라 발코니 모양과 크기도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식물 키우기가 취미인 사람의 방에는 삼면으로 꽤 넓은 발코니가 둘러져 있다. 옆 방에서도 발코니로 나올 수 있어 친해지면 같이 밤바람을 쐬며 맥주를 마시거나 작은 식탁을 놓고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다. 화장실끼리 발코니로 연결된 방들도 있다. 이쪽 방 사람이 대형견을 키우고 저쪽 방 사람이 자전거를 취미로 할 경우, 서로 양해를 구하고 발코니에서 개를 목욕시키거나 자전거를 세척할 수 있다.

“특정 취미를 가진 사람만이 그 방을 쓸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공간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파트에서만 살면 전용공간과 공용공간을 활용하는 법을 잊거든요.”

둘이 되면 늘리고, 혼자 되면 줄이고

지하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 음향과 방음시설을 해 극장으로도 쓸 수 있다. 계단은 관객석이 되고 카운터가 있던 자리는 무대가 된다. SSD아키텍처 제공
지하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 음향과 방음시설을 해 극장으로도 쓸 수 있다. 계단은 관객석이 되고 카운터가 있던 자리는 무대가 된다. SSD아키텍처 제공

지하의 카페는 입주민들의 또 다른 공용공간이자 예술가들의 쉼터다. 건축주는 미술을 전공한 딸을 위해 2층에 토이 아트 갤러리를 만들면서 작가들끼리 소통하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카페는 음향과 방음시설이 돼 있어 극장으로도 쓸 수 있다. 카운터를 뒤로 밀어 무대를 만들면 계단엔 스무 명 남짓의 관객이 들어찬다. 이미 홍대 인디밴드들도 몇 차례 와서 공연을 열었다. 건축주는 소규모 문화공간이 전무한 동네에 마이크로하우징이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길 바랐다.

“외국에서 온 예술가들을 위해 방 일부는 늘 비워놓습니다. 숙식을 제공 받은 작가들이 보답처럼 화장실, 담벼락, 계단 등에 꼭 흔적을 하나씩 남기고 가요. 주변 어린이집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그림을 그려준 작가도 있습니다. 건물 하나 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동네 풍경을 바꿔 나가니, 이런 건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팎에 흐르는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입주자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마이크로하우징에 사는 사람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 디자이너거나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혼밥’에 익숙한 세대에게 한 칸짜리 방은 구속이 아니라 해방이다.

마이크로하우징 1층 외관. 지하 카페에 천창을 내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카페엔 자연 채광 기능도 한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 1층 외관. 지하 카페에 천창을 내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카페엔 자연 채광 기능도 한다. SSD아키텍처 제공

외벽에는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꼬아서 만든 띠로 전체를 감쌌다. 이웃집과 거의 벽을 대고 있다시피 한 주거밀집지역에서 사생활을 보호하는 한편 방범창, 난간, 자전거 거치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멀리서 보면 건물 전체에 비가 내리는 듯한 독특한 외관은 무엇보다 입주자들에게 집에 대한 애착을 불러 일으킨다. “고시원의 문제는 ‘빨리 돈 벌어서 나가야 할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럼 사용자는 공간을 ‘학대’하게 됩니다. 집은 엉망이 되고, 더 투자하기 싫어지고, 악순환이죠.”

박진희 건축가는 “쭉 살 수 있는 집”을 위해 각 방을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혼자 살다가 결혼했을 경우 옆 방을 사거나 빌려서 확장할 수 있다. 아이가 생기면 그 옆 방을 사서 또 늘리고 자녀가 다 자라 독립하면 되파는 식이다. 이 경우 공용공간이던 발코니는 개인공간으로 편입된다. 박 소장은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마루를 거치는 한옥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유닛과 유닛을 연결해 공간을 확장하는 연면적 17만㎡의 대규모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원하면 방을 1개에서 20개까지 늘릴 수 있는 구조다. 이슬람 문화권이라 한국보다 더 가족중심적인 말레이시아에서 이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란 건 의미심장하다.

“마이크로하우징의 개념을 다소 급진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비혼, 이혼, 고령화 등 사회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거 형태를 미리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가구 불법 증축이나 동네 슬럼화는 다 집이 거주자의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내 삶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변화를 받쳐주는 집이 필요합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스테인리스 스틸을 꼬아 만든 띠를 집 전체에 둘렀다. 방범창, 난간의 기능에 더해 햇볕의 방향에 따라 외관이 달라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SSD아키텍처 제공
스테인리스 스틸을 꼬아 만든 띠를 집 전체에 둘렀다. 방범창, 난간의 기능에 더해 햇볕의 방향에 따라 외관이 달라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 건축개요

대지위치: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

대지면적: 204.10㎡

건축면적: 120.14㎡

연면적: 514.65㎡

건폐율: 58.86%

용적률: 194.33%

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구조: 철골조

외부마감: 시멘트 보드, 스테인리스 스틸 스크린, 커튼월

내부마감: 친환경 수성페인트 마감, 강마루, 시멘트 보드

설계: 박진희 SsD아키텍처

마이크로하우징 평면도. 각 방이 발코니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는지를 볼 수 있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 평면도. 각 방이 발코니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는지를 볼 수 있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 측단면도. 조망이 가장 불리한 가운데 세대도 침대에서 하늘을 볼 수 있게 비상계단(오른쪽)에도 창문을 냈다. SSD아키텍처 제공
마이크로하우징 측단면도. 조망이 가장 불리한 가운데 세대도 침대에서 하늘을 볼 수 있게 비상계단(오른쪽)에도 창문을 냈다. SSD아키텍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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