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추석을 앞두고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시장에서 물건을 사시라”며 1만원짜리 상품권을 나눠준 것을 두고 구설에 올랐다. “명절을 앞두고 윷놀이 분위기를 돋우려고 준비한 것”이라는 강 장관측의 해명과는 달리 “위안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얼마든지 선의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지난 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12ㆍ28 합의 이행의 일환으로 지난 달 말 10억엔을 한국측 관련 재단에 송금을 완료했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일본측에서 할 일을 다했으니 이제는 한국에서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상의 압박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소녀상 이전 및 철거는 양국간 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일본 총리가 양국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언급한 배경에는 분명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확산되는 형국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두고 펼치는 교묘한 언론플레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해 12ㆍ28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녀상 관련 부분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적혀 있다. 어느 대목에도 이전과 철거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일본은 마치 10억엔 송금의 대가가 소녀상 이전과 철거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애당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시민단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설치를 추진하고, 종로구청이 허가한 사항으로 정부의 개입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지속적으로 설치 당사자를 제외한 한국 정부만을 협상 대상으로 삼아 철거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우리 정부에 소녀상 문제를 기댄 것은 지자체의 조형물 관리가 구속력이 없어 결국에는 양국간 외교적 문제로 해결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실낱 같은 희망마저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서울시의회는 9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소녀상을 이전하려면 서울시의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조례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는 우리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려고 해도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뿐이 아니다. 12ㆍ28합의 이후 전국적으로 소녀상 건립붐이 일어나 현재 40개가 넘는 지자체가 소녀상을 세웠거나 건립을 추진 중이다. 미국 호주에 이어 독일 프라이부르크에도 소녀상 건립이 추진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소녀상 건립은 확산일로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보았다고 주장해온 일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복기해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론은 진정성이다. 처음부터 진심을 갖고 사죄하는 자세를 갖췄다면 소녀상이 이처럼 전세계로 확산되지 않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의 형식적 해결에만 집착,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비엔티안에서 박 대통령과 만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 앞서 가해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로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다.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지금이라도 아베 총리가 12ㆍ28합의문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야 말로 소녀상을 비롯,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창만 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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