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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짠짜라짠짠

입력
2016.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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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어느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배낭 안에 소주병과 새우깡만 달랑 챙긴 길이었다. 풍경이 하도 좋아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이런 데서 밥을 먹으면 무얼 줘도 달 것 같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주인 할머니는 부엌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밥 가가라! 밥 가가라꼬!” 우리는 부리나케 뛰어가 쟁반을 받아왔다. “이따가 부침개도 한 장 찌지줄게.” 그렇게 받아온 시락국은 너무 짰고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는 시큼하기만 해서 아무래도 상한 것 같았다. 부침개 속 오징어도 너무 질겼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던 건 산 아래로 펼쳐진, 약간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풍경들 때문이었다. 챙겨간 소주를 마실 틈도 없이 밤이 깊었다. 마시지 않아도 그냥 취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나직나직해졌고 별채에서 주인 할머니는 노래를 불렀다. 길고 텅 빈 밤을 보내는 할머니만의 방법이었을 테다. 재래식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휴지 좀 주세요.” 할머니는 어느 노래의 끄트머리를 부르던 중이었다. “짠짜라짠짠. 벤소 갈라꼬?” “네.” “짠짜라짠짠. 휴지 쓰고 요다 다시 갖다놔래이. 내도 써야한대이. 짠짜라짠짠.” 할머니는 가사를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원래 그 노래가 짠짜라짠짠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인지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서도 연신 짠짜라짠짠 노래를 불렀다. 밤에는 비가 왔고 계곡물을 바가지로 받아 우리는 처마 밑에 앉아 양치질을 했다. 밤에는 새들이 울지 않는다더니 비 맞은 까마귀는 깍깍 시끄럽게도 울어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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