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근(29ㆍ수원시청)은 시원한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확정한 뒤 관중석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 권혜진(37)씨를 뜨겁게 안았다.
최광근은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리우패럴림픽 시각장애 6급 남자 100㎏급 결승에서 브라질의 테노리오 안토니오(46)에게 발뒤축후리기 한판승을 거뒀다. 2012 런던패럴림픽에 이은 대회 2연패다.
브라질 관중들은 일방적으로 자국 선수 안토니오를 응원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최광근은 기죽지 않았다. 경기시작 1분 21초 만에 발뒤축후리기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안토니오는 최광근의 팔을 번쩍 들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최광근은 4년 전 런던패럴림픽에서 우승할 당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으로 통역을 맡았던 아내 권 씨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처음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권 씨는 최광근을 좋은 동생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최광근이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2013년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이듬 해 웨딩마치를 올렸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권 씨는 “내가 운전해야 하는 걸 빼면 불편한 게 없다”며 개의치 않아 했다. 결혼식은 소박했다. 반지도 맞추지 않았고 신혼여행도 안 갔다. 권씨는 “바빠서 그랬을 뿐이다”고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최광근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었다. 그는 리우패럴림픽을 앞두고 ‘반지 대신 금메달을 아내 목에 걸어주겠다’고 다짐했고 약속을 지켰다. 최광근은 시상식이 끝난 뒤 아내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부족한 나와 결혼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권 씨는 취재진에 “그 어떤 남자보다 부족함이 없는 남편이다”고 말하며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였다.
최광근은 학창시절 촉망 받는 유망주였다.
고교 2학년 때 훈련 도중 상대 이마에 왼쪽 눈을 강하게 부딪혔다. 가벼운 충격에도 망막이 떨어져나가는 망막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끝내 왼쪽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눈도 영향을 받아 지금은 눈앞의 물체만 겨우 희미하게 구별하는 정도다. 하지만 도복을 벗을 수 없었다. 악착같이 훈련해 장학생으로 한국체대에 입학했고 장애인 선수로는 드물게 비장애인 팀인 양평군청에 입단했다. 2010년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 이어 2012년 런던패럴림픽,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따며 최강자로 군림했다. 2년 전 양평군청에서 나온 뒤 새 팀을 찾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 이때 수원시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금오연 수원시청 감독은 “최광근은 아내와 아들 수현(1) 군 밖에 모른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잘 할 거라 봤다”고 회상했다. 또한 수원시청 소속으로 리우올림픽 유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같은 체급의 조구함(24)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조구함이 국제 대회에 나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최광근이 국내에서 열리는 비장애인 대회에 시 대표로 출전한다. 금 감독은 “시각장애인 유도선수들은 감으로 기술을 걸어야 해서 비장애인선수보다 두 배의 땀을 쏟아야 한다. 이를 악물고 힘든 훈련을 이겨낸 최광근이 자랑스럽다”고 기뻐했다.
사격에서는 이장호(27)와 김근수(43)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군에서 사격 교관이었던 이장호는 2010년 3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약 3년 동안 휠체어 영업과 수리를 하다가 2014년부터 본격 장애인 사격의 길을 걸었다. 집에서 왕복 180㎞ 거리의 사격장을 매일 찾아 실력을 쌓았다. 생활고에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가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보고 ‘다치기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셨다”며 “어머니에게 이 기쁨을 바치고 싶다”고 하염없이 울었다.
2001년 8월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척수 지체장애인이 된 김근수는 첫 출전한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날 경기에는 생활보조자 자격으로 리우에 온 아내 황해화(45) 씨가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생활보조자는 혼자 지내기 힘든 장애인 선수를 대회 기간 돌봐주는 역할을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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