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문제에 관여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관방장관이 지난 9일 폐렴으로 도쿄에 있는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일본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외무성 근무를 거쳐 1972년 처음 당선된 뒤 중의원(하원) 13선 경력을 쌓았으며 방위청 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을 지냈다. 1992년 7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 당시 관방장관 자격으로 “(일본군) 위안소의 설치나 운영ㆍ감독 등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고 인정한 ‘가토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강제연행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다음해 ‘고노 담화’가 나왔다. 고노 담화는 군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했다.
고인은 또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에 맞선 이른바 ‘가토의 난(亂)’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자민당 간사장을 맡았던 그는 야당이 제출한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냈지만, 결국 실패한 후 소수파로 전락했다. 일본 정계에서는 그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와 함께 3명 이름의 영문 첫 글자를 따 ‘YKK’로 부르기도 했다. 이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호칭이었지만 고인은 고이즈미 총리 재임 시절에는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비판했다.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혔지만 2002년 자신의 비서가 정치자금 조성 등의 과정에서 거액 탈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등 문제가 불거지자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자 자민당에 복당했다.
2012년 말 선거에서 낙선한 후 2013년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지명하겠다고 밝히고 정계를 은퇴했다. 당과 정부 요직을 역임한 그는 이후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가 하면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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