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갓(God)틸리케’라 칭송 받던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이 따가운 눈총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1일), 시리아(6일)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1ㆍ2차전이 원인이다. 한국은 중국에 3-0으로 앞서다 막판 집중력 난조로 2골을 헌납했다. ‘침대축구’로 중무장한 시리아와는 졸전 끝에 득점 없이 비겼다.
2014년 9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한 지 반 년도 안 돼 큰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작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이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1ㆍ2차전에서 오만과 쿠웨이트를 모두 1-0으로 누르고 3차전 결과에 관계없이 8강을 확정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슈틸리케 감독조차 “우리는 오늘(쿠웨이트전) 경기로 우승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매 경기 베스트11이 들쭉날쭉 하는 등 악재가 겹쳤지만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은 팀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질 듯 질 듯 지지 않는 ‘늪 축구’라는 신조어도 이 때 나왔다. ‘늪 축구’는 나중에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끈끈한 축구로 아름답게 포장됐지만 사실 답답하고 재미없는 ‘진흙탕축구’라는 부정적 의미가 더 강했다.
당시 현장에서 본 대표팀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선수들 사이에서 ‘미팅이 효율 없이 길다’ ‘감독이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한국 선수들의 잘못된 플레이를 편집한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했다가 반발을 샀다는 말도 들렸다. 감독이 얼마든지 ‘오답노트’를 공유할 수 있지만 한창 대회가 진행 중이라 단기처방이 필요한 시기에 고리타분한 장기처방만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큰 대회 도중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건 감독의 지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였다. 여러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한국 축구를 무조건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감독과 선수ㆍ코치ㆍ스태프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위태위태하던 슈틸리케 감독은 허심탄회한 대화로 반전의 물꼬를 텄다. 차두리(36)와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이 슈틸리케 감독과 따로 면담하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코치 중 가장 선임인 신태용(46) 코치도 슈틸리케 감독과 독대했다. 대표팀은 개최국 호주와 3차전부터 달라졌다. 1ㆍ2차전에서 4-1, 4-0 대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던 호주를 1-0으로 잡았다. 앞선 두 경기와 스코어는 같았지만 경기력은 180도 달랐다. 이후 8강과 4강에서 우즈베키스탄, 이라크를 2-0으로 연파하며 1988년 이후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호주를 다시 만나 1-2로 패했지만 0-1로 뒤지다가 종료직전 손흥민(24ㆍ토트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는 등 전체적으로 선전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이후 1년 반 동안 슈틸리케호는 큰 위기 없이 순항했다.
하지만 최종예선은 지금까지 무대와 차원이 다르다. 우선 만만한 팀이 없다. 또한 대부분 팀들은 한국을 상대로 승점3(승리)이 아닌 승점1(무승부)을 따기 위해 수비 위주로 나온다. 밀집 수비를 깨려면 결정적인 순간 수비수를 따돌릴 수 있는 개인기가 필수다. 하지만 한국은 스페인이나 독일, 브라질 같은 일류 팀이 아니다. 냉정히 말하면 앞으로 이어질 최종예선 내내 시리아전 같은 답답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매 경기가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그가 이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호주 아시안컵 때처럼 돌파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진짜 검증대에 선 슈틸리케 감독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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