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 지사가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성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자살하면서 남긴 리스트의 8인 가운데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같은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둘 다 아직 1심 판결이지만, 리스트가 사실일 가능성을 크게 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성 전 회장이 죽기 전에 남긴 진술 내용과 메모의 증거 능력 인정 여부였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 언론과 통화에서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윤승모 전 부사장을 통해 홍 지사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진술 경위가 자연스럽고 다른 사람들의 진술 내용과 부합해 특별히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물증 확보가 쉽지 않은 공직부패 사건에서 공여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판부가 성 전 회장 진술과 메모의 신빙성을 그만큼 높게 봤다고 할 수 있다.
홍 지사의 유죄 선고로 ‘성완종 리스트’의 신뢰성이 또 한차례 입증되면서 기소되지 않은 6인을 둘러싼 의혹 또한 커지고 있다. 당시 메모에는 ‘김기춘 10만 달러, 허태열 7억 원, 홍문종 2억 원, 서병수 2억 원, 유정복 3억 원, 홍준표 1억 원, 이완구, 이병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만 기소하고, 나머지 6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무혐의’ 또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수사를 두고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상을 줄 ‘대선자금’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검찰 수사에 앞서 박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성 전 회장 사면 의혹에 대한 수사를 주문해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이라는 비판도 낳았다. 공교롭게도 기소를 면한 6명이 모두 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어서 의심이 더욱 커졌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사법 처리 내용을 밝히면서 ‘중간수사 결과’라는 표현을 써서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 2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불기소한 6명을 추가 고발하며 검찰의 적극적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4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법부의 거듭된 판결로 검찰은 이런 의문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할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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