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발사된 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포함된 지구 사진. 외계인들에게 우주를 여행하는 취미가 있다면 이 별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래 숫자는 지구의 직경이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등 지음ㆍ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384쪽ㆍ2만5,000원
55개 언어 인사말ㆍ사진 118장 등
보이저 1ㆍ2호에 실린 LP 속 담겨
美 의원 이름부터 DNA 구조까지
해프닝 연속이던 제작 과정 기록

외계인에게 한 줄짜리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안녕? 여긴 지구야”. 이건 너무 평범하다. “안녕? 우릴 침략할 생각은 아니겠지?” 지구 멸망 서사를 너무 많이 본 듯 하다. “빨리 와서 지구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해줘”. 외계인에게도 유머 감각이 있다면 이게 풍자란 걸 알아채겠지만 그대로 이해한다면 큰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외계에 보낼 한 줄짜리 메시지를 정하는 작업이 실제로 있었다. 여행자란 이름을 가진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가 1977년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됐다. 이들은 목성과 토성을 탐사한 뒤 태양계 바깥으로 튕겨 나가 영원히 우주를 떠돌 운명이었다. 이 탐사선들에는 지름 약 30㎝의 금박을 씌운 LP레코드판, 일명 ‘골든 레코드’가 붙어 있다. 태양계 밖에서 마주칠지 모를 미지의 외계 문명에게 보내는 지구의 자기소개서다. 그 안에는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 27곡,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지구와 생명의 진화를 표현한 소리 19개, 지구 환경과 인류 문명을 보여주는 사진 118장이 수록됐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미국 우주비행사 제임스 맥디빗의 사진. 다섯 개의 손가락인 것으로 사람임을 추정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지구의 속삭임’은 당시 골든 레코드판의 제작을 맡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총책임자)과 프랭크 도널 드레이크(기술감독), 앤 드루얀(창작감독), 린다 살츠먼 세이건(인사말 구성작가), 존 롬버그(디자인감독), 티머시 페리스(프로듀서) 등 6명의 관리자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기록이다. 제작 과정 자체가 지구의 소개 자료로 적합하다 할 정도로 해프닝의 연속이다.

청각 메시지로서의 인간의 말이 외계인에게 흥미롭게 여겨질 거라 생각한 세이건은 인사말을 녹음하기로 한다. 문제는 누구의 말을 담을 것인가이다. 세이건은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하루이틀 머무르며 가입국 대표들로부터 인사말을 받으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대표단 수석의 대부분이 남성이라 지구의 성비를 보여주는 데 부적합했을 뿐 아니라 당일 자리를 비운 대표도 있을 터였다. 결국 유엔 산하 우주공간위원회 위원들의 인사말을 받기로 했지만 대표들은 일장연설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간신히 편집을 마쳤으나 이번엔 당시 유엔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이 우주에 보낼 인사말을 직접 낭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요청한 적 없는 일이지만 내용이 좋아 세이건은 이것도 레코드판에 싣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의문이 든다. 정작 보이저호를 발사한 미국의 대통령은? 결국 지미 카터 대통령의 메시지도 실린다. 아니, 그럼 상하원 의원들은? 놀랍게도 그들의 이름도 실린다. “존 테니스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의 이름이 왜 보이저 레코드판에 실렸는가 하고 누군가 의아해 한다면, 쿠르트 발트하임과 관료주의의 속성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대답해주면 된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사진들. 왼쪽부터 인체 내부, 사계절과 바닷속 풍경,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필리핀 여성. 사이언스북스 제공

사진은 (외계인에게도 눈이 있다면)가장 강렬한 메시지가 될 것이었다. 세이건과 동료들은 인간의 생식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한 사진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은 “노골적 성적 정보”는 실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전에 쏘아 올린 파이오니어 10, 11호에 새겨진 인간 남녀의 나체에 대해 “우주로 외설물을 보낸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DNA 구조 그림을 실을 때도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화학적 속성을 갖고 있다면 DNA그림이 신기하겠지만, 만약 온 우주 생명체의 속성이 동일하고 그들이 이미 그걸 알고 있다면? 우릴 너무 무식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고심 끝에 선택된 118장의 사진엔 우주에서 본 지구, 인체의 겉과 속,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 사계절 풍경, 올림픽 육상주자들, 뉴턴의 저서 ‘태양계의 구조’의 한 페이지, 정밀기기를 생산하는 공장 등이 포함됐다.

이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익히 알고 있듯 지구와 연락이 닿은 외계 문명은 아직 없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지구의 ‘자소서’를 쓰기 위해 전 인류가 한마디씩 훈수를 둔 것 자체가 축제였다. 게다가 보이저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탐사선의 예상수명은 2030년, 레코드판의 예상수명은 10억년이다. 아득한 훗날, 보이저 레코드의 모든 메시지를 이해한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해 “말씀 많이 들었다”며 악수를 청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지구가 ‘안녕’하다면.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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