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식사 뒤면 딱 알맞겠다. 석양이 드리워진 창가에 앉아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슬슬 출근할 생각을 할 때쯤이면 으레 나올 만한 한마디.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이 푸념이 책 제목이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닌데, 그래도 이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저자는 1979년생 일본 와세다대 출신 구리하라 야스시. 이러면 엘리트 같은데 실상은 다르다. 일단 주 연구 대상이 오스기 사카에다. 맞다. 20세기 초 일본 사회주의권의 거물. 그 때문에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과 함께 살해된 아나키스트. 그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니 당연히 ‘혐한’ ‘헤이트 스피치’로 유명한 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에 대한 반대 시위 등에 열성적으로 뛰어다닌다. 위안부 따윈 모르겠다는 아베 신조를 두고는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떠올리며 “일본에 있는 중국인과 조선인이 쇼와 천황과 군부의 우두머리들을 제물로 바쳐 머리 가죽을 벗겨버”리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전은 또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올바름’의 이름으로 계몽되지 못한 이상한 바보들을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열혈 좌파도 아니다. 아무렴.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대개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집회가 너무 일찍 시작해서 참석하기 곤란하다고 말하고, 혹여 시간 맞춰 갈 수 있을 때 일어났더라도 타고난 ‘길치’라 도심을 헤매다 보면 정작 집회보다는 집회 뒷풀이 때에나 간신히 도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집회 참석도 일이라면, 이 또한 일 안하고 배불리 먹는 것이긴 하다.
시위에 참여했어도 재특회에 맞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구호 몇 번 외치고는 지쳐서 뒤로 빠져 담배나 피워댈 정도로 “비실비실하고 허약해서 별 쓸모가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박사 논문은 미끄러졌고 대학 강의는 잘리기 일쑤고 한 때 결혼을 꿈꾸던 여성은 저자의 무능력에 진절머리 치다 떠나갔다. 그 냉정한 절교 선언 뒤에다 대고 저자가 하는 거라곤 “좋아하니까 사귀고 있을 뿐인데 장래의 생활을 위해서라느니,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든가 하면서 돈 생각만 하고 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가면서”라는 중얼거림뿐이다.
저자는 왜 이리 살게 됐을까. 한번은 도쿄 노숙자들의 ‘한겨울 살아남기 투쟁’에 가담했다. 이 지식인의 손은, 정작 밥하고 빨래하고 트리 만들고 하는 데는 완전 잼병이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진 구리하라를, 노숙자들은 “괜찮아, 와준 것만으로도 좋은 걸”이라며 끌어안았다.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이 강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과잉이라 할 정도로 고조”된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을 맛본 셈이다. 저자는 되물었다. “보상이 부족하다고 차별과 혐오를 일삼을 것인가, 살아있는 모든 것과 은혜를 나눌 것인가.”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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