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유독 무서워하던 소년이 세계 최고의 장애인 수영 선수로 성장했다.
9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쿠아틱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우패럴림픽 남자 자유형 100m(장애등급 S4ㆍ 작은 수 일수록 장애 정도 심함)에서 1분23초36의 기록으로 우승한 조기성(21ㆍ부산장애인체육회)이다. 한국 최초의 패럴림픽 수영 자유형 금메달이다. 조기성은 어린 시절 물을 두려워했다. 뇌병변 장애로 하체를 쓰지 못하는 그는 “물에 들어가면 온 몸이 경직되곤 했다”고 털어놨다. 대인기피증이 있던 터라 물로 들어가는 건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를 물 안으로 끌어들인 건 지인이 던진 말 한 마디였다. 조기성은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고 누군가 말을 했고 귀가 번쩍 띄었다. 정말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2008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물은 놀이터가 됐다. 수영을 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실력도 나날이 늘었다. 다른 사람처럼 두 발은 쓰지는 못했지만 두 손으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쳤다.
2009년에 출전한 수원시장배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선 자유형 50m 동메달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100m 은메달과 200m 금메달을 거머쥐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번 패럴림픽을 앞두고도 누구보다 많은 구슬땀을 흘린 그는 대회 직전 인터뷰에서 “패럴림픽은 수영을 시작하고 처음 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다”며 “지금은 메달 기대주로 인터뷰를 하지만 돌아와서는 메달리스트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 때까지는 미친 듯이 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가족이었다. 조기성의 어머니 김선녀 씨는 개인 시간을 모두 희생하며 아들의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조기성은 “부모님은 나 때문에 개인생활이 거의 없으셨다. 어머니의 희생은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빚”이라며 “누나도 나로 인해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껏 받지 못했다. 누나의 희생이 수영 선수 조기성을 만든 셈이다”고 고마워했다. 조기성은 13일 자유형 200m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이인국(21ㆍ안산장애인체육회)도 같은 날 남자 배영 100m(장애등급 S14)에서 한국 선수단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이인국은 4년 전 런던 패럴림픽에서 실격패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지적장애인인 그가 잠시 한눈을 팔았고 코칭스태프가 그를 찾지 못해 경기 20분 전 경기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3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인국의 아버지 이경래 씨와 어머니 배숙희 씨는 가슴이 무너졌다. 이때부터 이 씨 부부는 아들이 참가하는 모든 국제경기에 따라다녔다. 아들이 이날 결선에서 59.82초의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본 이경래 씨는 “패럴림픽 금메달은 인국이가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 아들이 부족함이 많을지 모르지만 비장애인들이 최선을 다해 꿈을 성취하듯 장애인인 우리 아이도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 아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인국은 안산 단원고교를 졸업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1년 후배들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어머니 배숙희 씨는 “(이)인국이가 수영을 통해 후배들과 동문들의 아픔을 치유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메달의 주인공은 장애인 사격 경력 2년의 김수완(34ㆍ경남장애인체육회)이었다. 전날인 8일 올림픽 슈팅센터에서 열린 남자 10m 공기소총입사에서 합계 181.7점을 기록해 3위를 차지했다. 2011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된 그는 우연히 휠체어 사격의 길에 들어섰다. 늦게 시작해 부족한 실력을 성실함으로 메우며 2년 만에 대표 선수가 됐고 패럴림픽 동메달까지 거머쥐었다. 김수완은 “아들이 이제 곧 학교에 진학하는데, 장애인 아빠를 뒀다고 놀림 당할까 봐 항상 걱정했다. 이젠 장애인 아빠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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