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사이
타네하시 코츠 지음ㆍ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248면ㆍ1만3,800원
“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납니다.”미셸 오바마가 울컥 터져 나오는 감정을 고르고 있을 때, 전세계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입했다. ‘세상과 나 사이’의 저자 타네하시 코츠는 미셸과 함께 울먹이는 사람들을 보고 시니컬하게 코웃음 쳤을 것이다. 흑인 대통령 부부의 존재를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몽상가’라며. ‘인류’나 ‘인류애’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는 만연하기 때문이다.
타네하시 코츠가 책을 집필한 2014년은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살해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을 때였다. 열여덟 살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은 담배를 훔쳤다는 이유로 백인 경찰관에게 총을 맞아 숨졌다. 경찰관은 비무장이었던 브라운을 향해 모두 열두 발의 총알을 발사했고, 이 사실은 흑인들의 분노를 결집시켜 퍼거슨 사태로 번졌다. 미국은 대통령이 흑인이지만, 여전히 흑인들은 단지 흑인이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체를, 목숨을 위협받는 곳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돌이키며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총과 주먹, 부엌칼, 강도, 강간, 질병 앞에서 알몸으로 버텨 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길은 있다. 현실을 도피하고 ‘꿈’속에서 마비된 채 살아 가기. 코츠는 “파푸아 사람들이 톨스토이와 프로스트를 배출하면 내가 기꺼이 읽겠다”며 인종주의를 드러낸 러시아계 유대인 작가 솔 벨로에게 맞춰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백인이라 생각하거나 백인처럼 살 수 있다는 ‘꿈’은 결국 깨지고 말았다. 바로 자신이 누구보다 동경했던 중산층 흑인 프린스 존스가 경찰의 손에 죽었음을 알았던 순간이다. 심지어 존스를 쏜 것은 흑인 경찰관이었다. 이 비극적이고 기만적인 현실에서, 흑인은 백인들의 ‘꿈’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니의 영웅 사모리 투레에게서 따온 이름을 가진 아들에게 ‘세상과 나 사이’라는 책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흑인’이라고 규정 당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고백하는 책이다. 흑인을 죽인 이들이 사실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변명하고, 흑인들이 실패한 삶을 사는 것은 ‘개인적인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광범위한 면책이다. 이 광범위한 면책, 즉 무책임한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츠는 아들 사모리에게 먼저 뿌리를 기억하라고 얘기 한다. ‘네 이름을 기억하렴. 너와 내가 형제임을. 대서양을 건너 저질러진 강간의 아이들임을 기억하렴.’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쟁이다. 패배의 가능성이 높음에도 싸워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멈출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지만 ‘네 선조들을 위해 싸워라.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네 이름을 위해 싸워라’라며 비장하지만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기억과 투쟁이라는 답에서 타네하시 코츠와 2016년 한국사회는 연결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로 끌려간 할머니들이 살아있음에도 가해자들은 느긋하다. 어차피 할머니들은 죽어갈 것이고 죽은 이들은 곧 잊혀질 것이라 자신하기에. 2년 전 세월호 희생자들이 잊혀지고 있기에 ‘산 자는 살아야 한다’고 무신경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기에. 기억과 투쟁. 그것은 잊혀지기 싫은 자, 잊혀지는 것을 방관하기 싫은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다시 한 번 코츠의 말을 되뇌어 본다. 우리가 그들을 멈출 수 없음을 알면서도 투쟁하라.
변해림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