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적 색체 더해지는 인도
2014년 모디 총리 집권 이후
‘마누 법전’ 권위 회복 움직임
임근동 한국외대 인도어과 교수
2015년 인도의 경제 성장률이 7.3%를 넘어서면서 성장률 6.8%인 중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듣고 중국 전공인 어느 교수와 나눈 10여 년 전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외국 학자들은 미래에 중국보다 인도의 경제가 더 성장 발전할 것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전통문화가 살아있지 않지만, 인도에는 전통문화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인도가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다. 당시에는 “힌두교라는 종교 안에 전통 문화가 살아 있다”고 대답했지만, 자신할 수는 없었다.
모디 정부 이후 인도 힌두화 뚜렷
2014년 5월 ‘힌두주의(hindutva)’를 표방하는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출범했다. 모디는 젊은 시절 출가해 히말라야 지역에서 수행자의 삶을 산 종교적 인물이다. 모디의 집권 이후 인도는 점점 더 힌두교적인 색채를 더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법조계에서 일고 있는 ‘마누법전(Code of Manu)’의 권위 회복 움직임이다. 얼마 전 인도 자라스탄주 법원 앞에 세워진 마누의 동상이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신화에 따르면 세상은 생멸(生滅)을 거듭하며 계속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때 인류의 조상이 되는 ‘최초의 인간’이 마누다. 마누는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출신지인 아유타(Ayodhy?, 아요디야)국을 건국하기도 했다. 마누가 제정한 마누법전은 힌두인이 지켜야 할 법을 규정하고 있다. 기원전 3,000년 무렵에 처음 제정됐고, 기원전 200년~서기 200년 사이에 집대성됐다. 만일 인도가 현재 세속주의 헌법을 포기하고 힌두교를 국교로 정한다면 마누법전이 새로운 헌법의 핵심이 될 것이다.
‘욕망을 실현하라’ 는 마누법전
마누법전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정도(正道), 경제, 욕망 세 가지가 법으로 정해졌다.” 힌두교는 살아가며 이루어야 할 목표로 네 가지를 설정하고 있다. 정도(dharma), 경제(artha), 욕망(k?ma), 해탈(mok?a)이다. 이 가운데 앞의 셋은 세속적인 인생의 목표다. 마지막 해탈은 출가한 수행자의 목표다. 마누법전은 인생의 네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수명을 100세로 상정하고 나이에 따라 생활시기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학생생활기’(brahmacarya), ‘가정생활기’(g?hastha), ‘은둔생활기’(vanaprastha), ‘해탈생활기’(sa?ny?sin)다. 각각 대략 25세, 50세, 75세 100세로 볼 수 있다.
‘학생생활기’는 올바름을 의미하는 ‘정도’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기다. ‘가정생활기’는 정도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시기다. ‘은둔생활기’는 ‘해탈생활기’의 준비 단계로, 숲에서 은둔하며 수행하는 시기다. ‘해탈생활기’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자로 살아가는 시기다. 은둔, 해탈생활기는 욕망을 벗어난 시기로 경제활동을 할 필요는 없다.
네 시기에 대해 ‘마누법전’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다른 시기들은 ‘가정생활기’에서 생겨난다.” 가정생활기에 이룬 경제적 성취는 다른 시기의 경제를 지탱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시 된다. ‘가정생활기’에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목표가 바로 정도, 경제, 욕망이다. 첫 목표인 정도는 나머지 목표에도 적용된다. 정도에 따라 올바르게 돈을 벌고(경제활동), 이 돈으로 올바르게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힌두교에서 경제는 바로 욕망, 소비를 위한 것이다. ‘가정생활기’ 다음 시기인 ‘은둔생활기’에 대해 마누법전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마을의 음식과 모든 가재들을 버리고, 아들들이나 아내에게 모든 재산을 주고 숲으로 가야 한다.” 바로 그 동안의 경제활동으로 벌어 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으로가 욕망을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마누법전에 따른 힌두교의 생활문화에 따르면 ‘가정생활기’만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시기다. 그런데 법전에 따르면 재산을 축적하더라도 아내나 자식에게 재산을 주고 떠나야 한다. 따라서 힌두교적인 경제문화는 역설적으로 소비가 미덕이 되는 문화로 볼 수 있다. 경제활동의 목적이 부의 축적이 아니라 소비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성장에 매우 유용하다. 소비의 증가는 경제성장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책 따라 복원된 힌두 운동
1980년대까지 인도의 문화는 힌두교의 목표인 욕망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약의 생활을 실천한 마하트마 간디와 네루식의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델리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인 만모한 싱이 경제장관이 됐다. 그가 자본주의 성향의 경제정책을 실시하며 욕망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80년대까지 인도의 수도 델리 시내에서조차 남녀가 손잡고 가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이런 청교도적 사회분위기는 싱 장관 이후 변화됐다. 에로틱한 영화포스터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현 인도의 집권당인 인도국민당의 힌두주의 운동이 아요디야의 라마(R?ma) 출생지 힌두사원 복원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라마는 힌두교 삼신 가운데 하나로 우주를 보호하고 유지, 육성하는 신 비스누(Vi??u)의 화신이다. 신화 역사상 라마는 마누의 먼 후손이며, 힌두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도(dharma)의 인물이다. 아요디야의 왕인 라마가 다스리던 땅을 ‘라마라즈야’(r?mar?jyaㆍ유토피아)라고도 한다. 라마라즈야는 모디 정권이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도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라마의 일대기를 담은 산스크리트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에 묘사된 아요디야는 여러 종류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산처럼 높은 궁정들이 있고, 모든 백성들이 화려한 장신구를 차는 곳이다. 아요디야는 그 어떤 백성의 욕망을 채울 물건도 부족하지 않은 곳이다.
정도의 원어는 다르마(dharma)지만, 다르마는 정확히 한마디로 옮기기가 힘든 단어다. 인도에서는 다르마를 ‘종교, 도덕, 정의, 관습, 의무’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다른 이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보시(d?na)는 다르마의 중요한 항목이다. 라마의 조상가운데 하나인 라구(Raghu)왕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눠줬고, 그가 다스리던 아요디야의 왕궁에 남은 것은 단지 질그릇뿐이었다고 ‘라구완샤’라는 산스크리트 고전문학 작품은 전하고 있다.
결국 모디노믹스의 핵심은 힌두 다르마(정도)에 바탕을 두고 성장과 분배(경제활동)를 통해 라마라즈야(유토피아)를 이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으로 아요디야처럼 인도인들의 욕망을 부족함 없이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누군가 “오늘날 인도에 전통문화가 살아있냐”는 질문을 다시 한다면, “실제로 그런 문화가 있고, 이는 욕망을 인생의 목표로 정한 마누법전의 힌두문화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 인도의 경제 성장률은 7.5% 그리고 중국의 성장률은 6.3%로 전망된다. 인도 전문가들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특히 문화가 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힌두교 안에 살아 있는 인도의 경제문화는 인도경제를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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