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1만6,500곳 밀집 비해 흡연구역 34곳 흡연권 침해 소지
건물 근처ㆍ골목길 등서 흡연 늘자 구에선 자체 흡연부스 잇단 설치
서울시, 가이드라인 다시 마련하기로
서울시 금연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흡연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권과 비흡연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 연기를 거부할 수 있는 혐연권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제처는 그러나 시의 조례가 금연구역 내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는 국민건강증진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조례를 수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지자체가 강력한 금연정책을 위해 금연구역을 자체적으로 설정하고 단속하는 건 상관없지만, 금연구역 내 흡연실까지 설치를 제한하는 건 흡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시는 올해 말까지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하고, 전문가 및 시민의견은 물론 각 구청들의 의견들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내 금연구역은 지하철역 출입구 1,662곳을 비롯해 1만 6,500곳이 넘지만 흡연구역은 34곳에 불과하다. 특히 금연구역이 밀집한 지역에서 흡연자들은 이면도로나 건물 옆 등 자체적인 흡연구역을 만들고 있다.
실제 세종대로 삼성본관 뒤편 파임파크에는 1시간당 흡연자가 660명에 달한다. 인근 대형건물 내 흡연시설 없다 보니 인근 직장인들의 상시 흡연장소 역할을 한다. 남대문시장 메사 원형광장도 시간당 400명이 넘는 상인들과 시장손님, 관광객 등이 흡연장소로 이용한다. 금연구역을 넓혔지만 흡연인구는 줄지 않고 흡연장소가 옮겨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직장인 최모(42)씨는 “건물도 금연건물에 대로변도 금연구역이라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려면 1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500m는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풍선효과의 최대 피해자는 대형건물 뒤편 상점 주민들이다. 삼성본관 뒤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6)씨는 “골목길에서 종일 피워대는 담배연기에 냄새가 심하다”며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혹시 손님이 줄어들까 하는 생각에 속앓이만 한다”고 했다.
시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사이 서울 중구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흡연부스 설치를 진행 중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다 명동 등 외국 관광객이 많은 관광상권과 을지로 등 오피스상권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흡연부스 설치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중구 관계자는 “길거리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형건물 내 흡연실 설치를 건물관리자들에게 공문을 통해 독려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구는 별도의 설치비와 관리비가 들어가지 않는 흡연부스의 설치를 늘리고 있다.
구는 현재 롯데백화점 앞 대로변에 설치된 흡연부스 이달 말까지 6개소로 늘릴 계획이다. 흡연부스 설치를 주도하고 있는 양찬현 중구 의원은 “흡연부스 설치를 금연정책을 완화하는 것으로 보면 잘못된 시각”이라며 “흡연자들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만큼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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