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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맑은 검사를 만나고 싶다

입력
2016.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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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관계자들이 검사선서문 앞을 지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8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관계자들이 검사선서문 앞을 지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0년 11월 ‘함바 게이트’의 서막을 연 거물 브로커 유상봉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그와 접촉한 경찰 가운데 돈을 안 받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씨 사건은 뇌관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더니 예상대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 간부들은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검사가 종이와 펜을 유씨에게 건네며 물었다. “당신한테 돈 받은 경찰들에 대해 진술해 보세요.” 유씨는 “너무 많아서 종이 한 장에는 적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검사가 “그럼 총경 이상만 잘라서 갑시다”고 했더니, 유씨는 “그래도 100명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난감해진 검사가 경무관 이상으로 말해보라며 범위를 좁혔지만, 그래도 30~40명은 넘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검찰은 고심 끝에 경찰 조직이 와해되지 않도록 3,000만원 이상 받은 고위 경찰간부 위주로 수사했다.

검찰 수사로 당시 옷 벗는 간부들이 속출하니 검찰이 꽉 막힌 경찰 인사에 숨통을 트게 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경찰엔 치욕적인 사건이었고, 검찰엔 우월감을 재차 심어준 수사였다. 검사들은 “경찰 간부들이 너무 쉽게 사람들을 만나서 놀랐고, 너무 쉽게 돈을 받아서 또 한번 놀랐다”며 혀를 찼다. 개인일탈로 보지 않고 구조적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검찰이 이처럼 경찰을 한 수 아래로 대했던 이면에는 지휘관계뿐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도 깔려 있었다. 사석에서 만난 검사들은 그 동안 “검사는 경찰과 달리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금품수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사건은 공정하게 처리하고 외부 압력은 단호하게 물리친다고도 했다. 검사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경찰이 “검사 1명 수사하는 게 국회의원 10명 잡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하면 검사들이 그 만큼 깨끗한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수사관 비리는 가혹하게 감찰하고 검사 비위첩보는 캐비닛으로 들어간다고 물어보면 “그럴 리가 없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내부자들’ 같은 검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상영되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깝게 지내는 경찰과 검찰 수사관들은 그럴 때마다 “지들이 10배는 더 받았을 텐데, 언젠가 크게 한번 터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10년 전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그들의 예언이 드디어 적중했다. ‘그랜저검사’(2010년), ‘벤츠여검사’(2011년),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수수(2012년) 등 검사 비리사건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개인일탈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진경준 검사장 주식뇌물 스캔들과 정운호 법조비리,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더 이상 개인일탈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됐다. 검찰이 6년 전 경찰 간부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일 때 헛웃음을 쳤던 구조적 문제가 이제는 검찰의 현실이 된 셈이다.

검사비리가 구조적 문제로 굳어진 데는 검찰의 왜곡된 브랜드 가치도 한몫 했다. 사회에 비정상이 판치다 보니 검찰에 기대하는 바가 커졌고 검사들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검사들은 그러나 이를 전적으로 자신들의 공으로 간주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입신양명의 발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몸 담았다 다른 기관으로 이직한 인사들은 친정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어깨에 힘 뺐다고 하지만 여전히 등 따습고 배부른 곳이 검찰이다. 대한민국 검사들은 뼛속부터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 “검찰 수사결과를 믿지 않고 나라가 음모공화국으로 변한 데는 검사들의 일탈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2010년 ‘그랜저검사’ 특임검사로 임명된 강찬우 전 검사장은 “검사의 피는 차갑다”는 말로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실천했다. 하지만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의 행태를 보면 검사의 피가 차가울지는 몰라도 맑은 것 같지는 않다. 집단 불감증에 매몰된다면 어렵게 쌓아 올린 검찰의 브랜드 가치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이제는 더 이상 내세울 도덕적 우월감도 없지 않나. 맑은 검사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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