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실형 받은 뒤 “노상 강도 당한 기분”
“대선 이야기 안 했으면 성완종리스트에 내 이름 없었을 것”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8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 대권 도전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새누리당에 두드러진 대선 주자가 없어 정치권에선 홍 지사가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으면 본격적으로 대선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특히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처럼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홍트럼프’를 자처하며 대권 도전 분위기를 띄웠으나 결국은 ‘성완종 리스트’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날 홍 지사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직후 취재진을 만나 “노상 강도를 당한 기분”이라며 “돈은 엉뚱한 사람에게 줘 놓고 왜 나한테 덮어씌우는지 저승에 가서 성완종(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후 서울 여의도 경남도 서울본부 사무소에서 가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도 “내 발을 묶어두어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판결을 순수 사법적 판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법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성완종씨가 반기문 마니아”라며 “그래서 내가 대선 이야기를 안 했으면 성완종 리스트에 내 이름이 끼어들 이유도 없었다”고 정치적 음모론도 제기했다. 경남지사에 당선된 직후 여러 차례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자, 이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성 전 회장이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허위로 올려 놓았다는 주장이다.
홍 지사는 이날 현직 도지사 신분임을 감안해 법정구속을 면하긴 했지만 대권 도전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심 결과를 뒤집어야 하고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는다 해도 대선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며 쌓아온 청렴ㆍ강직 이미지 대신 부패 정치인이란 낙인이 찍힌 것이 가장 큰 타격이다. 이번 판결이 이달 말 실시 여부가 결정되는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홍 지사는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은 공직생활 33년 동안 겪은 어려움에 비하면 사소한 사건”이라며 “내가 할 일은 흔들림 없이 할 것이고 항소심 일정에 맞춰 정치 일정은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 일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정계 은퇴 주장에 대해서도 “그러면 박지원(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씨는 10번도 더 은퇴했겠네”라며 일축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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