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 10개국 50여개 운영
김제 금구중학교 학생들에 특강
“고국에 와서 금수저, 흙수저 얘기 들으니 참 안타까워요. 여러분, 농촌 출신이라고 지레 포기하거나 절대 기죽지 마세요.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게 됩니다. 제가 바로 그 징표입니다. ”
8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구중학교 강당. 재미교포 태권도인 이준혁(54ㆍ공인 8단)씨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중학생들 앞에서 달랑 맨주먹 하나 들고 태평양을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제는 촌놈 출신이어서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어요. 살던 동네에 전기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들어올 정도로 외진 두메였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 따라 농사를 도우며 성실과 근면을 배웠죠. 논두렁 밭두렁 누비면서 단련한 심신이 낯선 이역만리에서 우뚝 설 수 있게 한 기본이 됐어요. 미국 생활 초기에는 20달러로 한 달을 버텨야 할 정도로 가난했어요. 잠은 차 속에서 자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을 헐값에 구입해 땅콩버터에 발라먹었어요. 그때 기억 때문에 지금도 땅콩버터는 쳐다도 안 봐요. 하지만 이를 고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내 꿈을 펼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요. 어떤 힘든 순간에도 미국 최고의 태권도 도장을 만들겠다는 꿈이 제 가슴에 늘 무지개처럼 떠 있었으니까요.”
이 사범은 전북 고창군 해리면 출신이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서울 올라와 대학 1학년을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33년간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며 제자 5만여 명, 이 가운데 유단자만 1만여 명을 배출했다. 현재는 미국ㆍ캐나다는 물론, 중남미와 유럽ㆍ중동 지역 10개국에 태권도 도장ㆍ클럽 등 5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활동 본거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나이트데일 시에서는 주민들의 신망이 두텁다.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찾아가는 자원봉사와 학교를 대상으로 한 독서캠페인, 방과후 교육 무료 알선, 빈민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 등에 앞장선 덕분이다.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까지 지냈다. 2011년에는 민주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173표 차로 아깝게 졌다. 인구 3만명 중 한국인이라곤 이 사범을 포함해 단 두 집에 불과한 지역이다.
이날 이 사범이 특강을 한 금구중학교는 한 학년당 2개 학급, 전교생 100명이 채 안 되는 농촌의 작은 학교다. 김판용 교장이 이 사범의 고교 3년 선배다. 김 교장은 “이 사범이 청주 무예마스터십 대회 참석을 위해 고국 온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달라며 방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사범은 지자체와 대학, 서울 국기원ㆍ무주 태권도원 등 기관 방문 등 바쁜 일정 일부를 미루고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농촌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싶다”며 이곳을 찾았다. 이 사범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지사가 다음 목표”라고 밝혔다.
김제=최수학 기자 shc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