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위탁계약을 맺고 2,500억여원을 모은 양돈업체 도나도나 사장의 유사수신 행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명목은 돼지 사육을 맡긴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것이라면 법이 금지한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우병우(49) 청와대 민정수석과 홍만표(57ㆍ구속)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으로 선임계를 내지 않고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 사건의 원심은 무죄였으나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8일 양돈업체 도나도나 대표 최모(69)씨의 상고심에서 유사수신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이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4억원대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와 은행 대출 과정에서 문서를 위조한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이 유죄를 인정했다.
최씨는 1만여명의 투자자들로부터 500만~600만원씩의 양돈위탁계약을 맺고 14개월 뒤 이 돼지들이 자라 새끼를 치면 더 비싼 가격에 양돈업체 도나도나에 되파는 조건으로 또 다른 계약을 맺었다. 투자금의 24~60%에 달하는 수익금은 12개월로 나눠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최씨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 다음 저축은행 등에 돼지를 담보로 864억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쟁점은 최씨가 위탁대금을 모집한 것이 돼지를 거래해 얻은 수입인지 아니면 돼지를 명목으로 내건 사실상 금전거래인지였다. 1ㆍ2심은 “최씨의 사업은 양돈업을 수익모델로 한 것으로, 실물거래를 가장ㆍ빙자해 자금을 조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유사수신행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돼지 분양 거래가 실물거래처럼 보이지만 계약 내용과 실질을 보면 사실상 금전 거래에 불과해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 자란 돼지를 도나도나에 되팔기로 계약해 실제로 투자자들에게 돼지가 넘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계약의 실질은 돼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 최씨가 투자자들의 돼지를 사육하는 대신 이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양도한 점도 돼지가 자금 조달을 위한 명목에 불과하다는 근거로 들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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