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민원 걱정에 참여 피해
서울아산병원 혼자서 전담하다
추석 이후 4차부터 대폭 확대
“모든 병원서 상담 가능케 해야”
12개 대형병원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기관으로 참여한다. 그간 병원 한 곳이 전담해 지연됐던 관련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7일 환경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8일 서울아산병원은 서울에서 전국 11개 대형병원을 상대로 조사판정 프로토콜 공유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3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때까지 조사 업무를 홀로 수행해 온 아산병원이 다른 병원들과 피해조사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유의사항 등을 점검하는 자리다. 이날 세미나에는 일선에서 조사 업무를 담당할 각 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병원들은 추석을 전후로 정부와 계약을 맺고 4차 조사 업무에 본격 참여하게 된다. 수도권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들이, 지방에서는 인제대 해운대백병원과 전남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천안 단국대병원 등이 나선다.
피해조사 기관의 확대 필요성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직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특수성을 띄고 있는 탓에 피해조사 업무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아산병원의 프로토콜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병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기술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병원들의 속사정도 있었다. 4차 조사에 참여키로 한 A병원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정부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았으나, 의료진이 기존 진료를 하면서 추가로 피해조사 업무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 같아 망설였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참여 결정을 여전히 보류 중인 다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뒤늦게 참여했다가 만약 적절치 않은 판단을 내려서 문제가 생기면 병원으로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판정에 불복해 병원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피해조사 기관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정부가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조사 업무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40)씨는 “병원에 가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상담하려고 하면 의사들이 ‘여기서는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기피한다”며 “정부는 가습기 문제를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모든 일선 병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조사기관 확대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속이 탄다”고 했다.
앞서 5일 취임한 조경규 환경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 후속조치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도록 피해를 신속하게 조사, 판정하겠다”고 밝혔다. 5일 기준 4차 피해 접수자 수는 3,231명으로 3차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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