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친 대중성. 빅 5가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독일 문화평론가 헤르베르트 하프너가 이렇게 토를 달면서도 BBC 심포니, 런던 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런던 빅 5’ 오케스트라로 꼽은 곳이 영국 로열 필하모닉(로열 필) 오케스트라다. 빅 5 중 가장 늦게 1946년 출범했지만 루돌프 켐페를 비롯해 앙드레 프레빈,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다니엘레 가티 등 세계적인 지휘자를 영입해 ‘이 시대 가장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오케스트라’(선데이타임스)로 발돋움했다. 로열필은 1986년 자체 레이블 ‘RPO 레코드’를 출범했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단원을 뽑았다. 제임스 골웨이(플루트), 잭 브라이머(클라리넷), 데니스 브레인(호른) 등의 걸출한 스타 연주자가 이 악단을 통해 배출됐다.
로열 필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는다. 8일 서울 예술의전당,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부수석 지휘자인 알렉산더 셸리(36)가 맡는다. 셸리는 7일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빠르고 유연하며 민감하고 격정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로열 필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연주자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지휘를 해도, 어떤 음악이어도 그들의 높은 기준을 낮추지 않아요. 이런 문화가 유지되는 한 로열필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남을 겁니다.”

셸리는 영국의 명 피아니스트 하워드 셸리의 아들로 첼로와 지휘를 함께 공부하다 2005 리즈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지휘에 전념해왔다. 그는 “오케스트라는 존재하는 악기 중 가장 다양하고 유연하다”며 “(지휘를 할 때면)양손을 이용해 바디랭귀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의 부지휘자로 경력을 쌓은 그는 현재 로열 필 부수석과 독일 뉘른베르크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함께 맡고 있다. 현재 로열 필 예술감독은 샤를 뒤투아다.
셸리는 “최고의 스승님들께 받은 최고의 조언은 인간을 가능한 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다른 형태의 지휘자들이 존재해왔죠. 누군가는 강압적이고 누군가는 회유적이죠. 궁극적인 목적은 음악을 가능한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리허설 방법이나 지휘법으로 일반화하기 무척 어려운 거에요.”
셸리는 방한 공연 이틀 모두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지휘한다. “‘핑갈의 동굴 서곡’은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섬을 방문했을 때 쓴 곡입니다. 뱃멀미로 고통을 겪었지만 섬을 보고 난 후 깊은 영감을 얻었어요. 동굴 속에서 바다가 일렁이는 소리와 울림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입니다. 동기, 선율, 리듬들이 교향곡 세계의 DNA 처럼 연결돼 있죠.” 8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10일에는 첼리스트 김정환(제임스 김)이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협연한다. (02)585-4055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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