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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동안 약수동 지킨 이발사 송광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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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동안 약수동 지킨 이발사 송광채씨

입력
2016.09.0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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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 송광채씨가 서울 약수동 자신의 가게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중구청 제공
이발사 송광채씨가 서울 약수동 자신의 가게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중구청 제공

“40년 넘게 가게를 찾아오시는 손님이 있어요. 처음에는 검은 머리였는데 백발로 변할 때까지 온 거죠.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 혹시 돌아가셨는지 걱정이 되곤 해요.”

45년간 한 동네를 지키며 ‘이발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이발사가 있다. 서울 중구 약수시장의 ‘미성이발소’를 운영하는 송광채(68)씨가 그 주인공. 연세 지긋한 이발사의 편안한 미소와 한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낡은 흰 가운, 가게를 가득 채운 철 지난 물건들이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진 이발소가 그리운 장년층이나 호기심을 느끼는 젊은이들까지 모두 좋아할 만한 보기 드문 공간이다.

전북 정읍 출신 송씨가 서울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67년.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 배운 기술이 이발이었다. 당시 한 이발소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고 청소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송씨는 알뜰하게 모아 마련한 돈으로 1976년,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약수동에 이발소를 열었다. 주택재개발로 약수동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는 약수동 내에서 가게를 3번이나 옮겨야 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약수동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단골손님들은 가계를 옮겨도 꼬박꼬박 찾아 찾아온다”면서 “혹시라도 왔다가 허탕 치고 가는 손님들이 있을까 봐 휴가도 오래 써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창 이발소가 호황을 누렸던 1970, 80년대에는 서울 중구에만 500여 개의 이발소가 있었다. 남성들의 전용공간인 이발소는 단순히 머리 손질만 하는 곳이 아닌 문화공간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이발소가 사랑방 역할을 했다”면서 “이발소에서 소주 한잔 하며 동네 손님들의 말벗으로 지내왔던 세월이 벌써 50여 년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한때 손님이 오면 한두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였지만 요즘은 이용업과 미용업이 한 직종으로 묶이면서 미용실에 밀리는 추세다. 게다가 젊은 남성들이 최신 시설을 갖춘 체인 이용 업소로 몰리면서 전통 이발소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중구에는 현재 70~80여 개의 이발소가 남아있다.

송씨는 “80년대 이후 일부 무책임한 이발소로 인해 퇴폐업소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고, 환경도 크게 변해 안타까운 점이 있지만 앞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동네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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