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 같은 걸 보면 조선시대 아이들 10명 중 6명이 회충이 있었대요. 실처럼 얇은 건 요충이고, 회충 굵기는 연필 굵기쯤 되죠. 요놈들이 뱃속에 우글거리다 뭔가 문제가 생겨 한번 요동을 치면 아이들이 극심한 복통 때문에 얼굴이 하얘지면서 주저 앉거나, 심지어 게거품을 물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옛 아이들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발효식과 자연요법 치료를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고 싶은가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강병철(49)씨는 6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계간 과학지 ‘스켑틱’ 최신호에 아이들을 자연요법으로 키우자는 주장이 담긴 한의사의 책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 ‘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를 기고했다. 약 안 쓰는 건 아이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 아동학대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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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열 오른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을 몇 번 오가다 보면 병원 대기실 준전문가들(?)의 수근거림 속에서 이런 얘기들을 접하게 된다. “해열제 쓰면 몸이 병을 이기는 방법을 못 배우니 쓰지 말라” “약은 내성을 일으키니 웬만하면 쓰지 말라” “아토피는 오히려 긁어서 큰 상처를 낸 뒤 열을 밖으로 빼야 한다” “스테로이드 들어간 연고 같은 거 잘못 썼다가는 신장이 망가진다” “백신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못 맞을 것이다” “대장의 숙변을 빼는 해독요법을 써야 한다” 등등. 강씨는 이런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캐나다 이민 간 강씨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어느 웹진에 실렸던 자신의 글에 비판 댓글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열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일단 해열제부터 먹이라고 쓴 간단한 글에 온갖 악플이 달렸다. 강씨는 “약 안 쓰고 백신 안 맞고 어쩌고 하는 허무맹랑한 얘기는 정말 몇몇 소수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자연요법을 주장하는 책들이 널리 읽히고, 또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같은 데서 아주 빨리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먼저 숙변 얘기부터 하자. 해독을 위해 장을 비워야 한다는 얘기, 요즘은 ‘디톡스’라 포장해서 이걸 먹어라 어쩌라는 얘기 숱하게 보고 듣고 산다.
“해독 요법이란 두 가지다. 하나는 피. 하나는 변이다. 이건 역사가 오래됐다. 서양의학도 마찬가지다. 히포크라테스도 병이란 완전한 몸에 균형이 일그러진 것이고 다시 균형을 되찾으려면 뭔가를 빼내야 하는데 그게 피라고 봤다. 피나 변을 빼야 한다는 믿음이 깨진 게 18세기 이후 간의 생리작용이 밝혀지면서다. 인간 몸의 모든 해독작용은 간이 하고 있다. 피가 탁해서, 변의 독성이 번져서가 아니다.”
-그러면 정확한 디톡스는 어떤 방법이 있나.
“흔히들 간에 좋으니 뭘 먹으라고 하는데, 사실 간에 가장 좋은 건 그런 걸 안 먹는 거다. 간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모든 것의 독소를 해독하는 장기다. 안 그래도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런데 그 간을 돕겠답시고 또 뭘 들이붓는 건 간에 오히려 더 부담을 주는 것이다. 차라리 술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고, 평소에 깔끔한 음식을 먹도록 노력해 간의 부담을 줄이는 게 정답이다. 온갖 업체에서 얘기하는 디톡스라는 건 거짓말이라 보면 된다.”
-TV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대개 원흉이다. 한번 떴다 하면 유행처럼 뭐 먹어야 하고, 뭐해야 한다는 말이 돈다.
“가장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주제인데다, 요즘 채널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흥미 위주로 그런 정보들이 유통된다. 경계해야 한다.”
-해열제, 항생제, 스테로이드, 백신 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답은 ‘물어보고 써라’다. 어떤 성분을 고농축으로 담아둔 게 약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은 독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약은 약으로 쓰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테스트와 증명을 거쳐야 한다. 반면 흔히 말하는 건강보조식품은 고농축 기술이 필요 없으니 훨씬 손쉽게 만들어 팔 수 있다. 그런데 약은 못 믿고 온갖 요란한 광고가 따라붙는 건강보조식품은 믿는다?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단, 약물은 고농축 제품이니 약을 공부한 약사, 의사에게 물어보고 쓰라는 거다. 요즘 인터넷에 병원별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다 보니 가끔 ‘0%인 병원이 좋다’는 말이 나돈다. 오히려 난 그 병원을 의심해보라고 권한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세균성 질병 환자를 단 한 명도 진료 안 해봤다는 얘긴데 그게 대체 어떤 병원일까.”
-외국에서는 감기 걸려서 가면 “비타민 먹고 푹 쉬세요” 하는데, 우리는 굳이 약 주고 주사 놓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과잉 진료 아니냐는 의심도 여기서 생긴다.
“문화의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의사가 진찰한 뒤 “그냥 쉬세요” “타이레놀 사먹으면 충분합니다” 해도 진찰한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전문지식으로 컨설팅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그러면 환자들이 “그럴 바에야 약국 가지 병원에 왜 왔냐” “주사 한방 탁 놔달라”고 한다. 나도 개원했을 때 그 문제로 환자와 만날 싸웠다. 뭔가 주는 거 없이 말만 하고 그냥 가시라 하면 환자들이 못 받아들인다. 한가지 더 있다. 우리는 전문의가 너무 많다. 전문의로 열심히 배우는 건 신부전증 같은 어려운 질병이었는데, 정작 개업해서는 감기, 몸살을 주로 본다. 여기서 오는 부조화가 있다. 만약 과잉진료라 의심된다면 답은 하나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약을 조금만 처방해주는 병원을 찾아서 옮겨라. 그게 답이다.”
-문제는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인데.
“현대 의학이 처한 어려움이 바로 그 부분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 눈이 너무 높아졌다. 옛날엔 간이 나쁘면 거의 다 죽었다. 지금은 거의 다 산다. 아이들 백혈병의 경우는 생존율이 90%다. 지금은 살면 당연한 거고 죽으면 억울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그 다음 문제가 온다. 가령 방사선 치료 같은 게 오래되면 뇌세포가 많이 죽는다. 그 때문에 살 수는 있게 됐는데 머리가 나빠진다. 그러면 살았다, 보다는 왜 부작용이 생기느냐 따지게 된다. 의학은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많은 위험들을 해결해왔는데, 어찌 보면 그럴수록 점점 더 마음에 안 들게 된 셈이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모른다 하고, 방법이 없으면 없다 하고, 이렇게 치료는 하더라도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하는 의학보다 이렇게 하면 자기 몸이 스스로 살아난다는 얘기가 더 솔깃한 거다. 이는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외에도 병원의 불친절, 의료사고 등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현실적 불만이 있다 해도 현대 의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 문제라 더 민감한 것 같다.
“육아의 어려움이 그런 것 같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일이 자식 돌보고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눈높이가 높아지다 보니 이제 모든 걸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끌어들이고는 조마조마해한다. 아이들도 힘들지만, 사실 부모들도 부담스러운 거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해결책은 없습니다’란 전문가의 말보다 ‘이렇게 하면 효과 있습니다’는 비전문가의 주장에 손쉽게 넘어가는 거다.”
-자연요법 비판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얘기도 썼는데.
“사실 별로 재미없는 작업이다. 솔직히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책은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안하고 싶은데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하니 미룰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방법을 찾고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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