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달 31일,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대응방안을 발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행(行)은 일찌감치 예고됐던 상황. 하지만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 대책 마련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상피해액이 쏙 빠져 있었다. “손실이 확정되는 금융분야와 달리 해운ㆍ항만ㆍ물류 분야의 경우 확정 피해를 산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해수부의 변명이었다.
제대로 된 진단이 없으니 우왕좌왕하는 건 당연했다. 법정관리가 개시된 후 공해에 발이 묶이는 선박들이 하나 둘 늘어나 물류 피해가 확산됐지만 해수부는 아무런 처방전도 내놓지 못했다.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 13척을 투입하고, 부산ㆍ광양항 환적화물에 인센티브를 늘려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준비된 시나리오는 없었다. 해수부는 한진해운 탓을 했다. “한진해운이 선박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데, 관련 정보를 주지 않아 구체적인 대응책을 만들 수 없었다”고 했다.
주무부처이면서도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며 자조하는 목소리도 자주 흘러 나왔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선박이나 화물을 챙기는 것이고 금융과 관련된 것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선대를 보유한 대형 컨테이너 선사다. 동시에 우리나라 양대 국적선사로서 막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 후폭풍이 상당할 거라는 것쯤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국적선사의 운명을 놓고 금융당국ㆍ채권단과 올초부터 끊임없이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수 년 전부터 구조조정 논의가 진행돼 왔다. 그들의 변명과 자조는 우리나라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시간에도 80척이 넘는 배가 갈 곳을 못 찾고 공해상을 떠돌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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