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패이고 떨어져나간
보도블록ㆍ파라솔ㆍ건물 외벽…
부분 보수로 생긴 흔적들이
독특한 시각적 재미를 선사
수많은 색점을 찍어 완성한 추상화를 떠올렸다. 경기 고양시의 한 공원 산책로 위에 펼쳐진 다양한 작품…. 착각은 자유로웠고 두 눈은 황홀했다. 처음엔 한 가지 색깔로 견고하게 시공됐을 포장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밟히고 찢겨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부분 보수가 거듭되는 동안 상처 위엔 크고 작은 세모 네모가 덧씌워졌다. 독창적인 생김새의 ‘땜빵(부분 수선의 흔적)’이 늘어나니 추상화의 색감은 풍부해지고 바닥 갤러리의 품격 또한 높아졌으리라 상상했다. 그렇게 한참 누더기 같은 길바닥에 서서 땜빵의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일정한 규칙을 따라 이어진 보도블록 위에선 땜빵이 만들어 낸 변주곡이 변화무쌍하게 흐른다. 깨지거나 유실된 블록 대신 모양 색깔 크기가 확연히 다른 조각들을 임시로 끼워 놓은 경우다. 발 밑에 펼쳐진 임기응변의 조합들을 ‘테트리스’ 게임 하듯 세워 보고 뉘어도 보며 지나친다. 왠지 모를 측은함과 불편함은 이내 소소한 일탈이 주는 재미와 흥분으로 상쇄됐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벗어난 작은 변화, 천편일률 속에서 색다름을 발견하는 과정에 ‘땜빵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땜빵은 쉽게 버리는 대신 아끼고 고쳐 쓰는 절약 정신의 발현이다. 오랜 세월을 견딘 사물일수록 땜빵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구둣방 노점 할아버지는 구식 파라솔 곳곳에 땜빵을 한 덕분에 궂은 날씨에도 맘 놓고 실외 작업을 한다. 찢기고 뚫린 만물 노점상의 짐칸 덮개에도 청테이프 땜빵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철거를 앞둔 변두리 서민아파트의 외벽, 갈라진 틈새를 임시로 메운 충전제 자국이 주민들의 굴곡진 삶을 표현하듯 얽히고설켜 있다. 궁핍하고 고단한 삶을 지탱하듯 상처를 단단히 감싼 땜빵은 그 자체로 따뜻하고 아름답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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