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일본 정부가 7월 실업률을 발표했다. 실업률이 3.0%로 전월 대비 0.1% 포인트 줄었다. 이는 1995년 5월의 3.0%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다. 수치만 보면 고무적인데 정작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이번에 줄어든 실업률에 ‘고령화’라는 착시효과가 숨어 있다고 본다. 일본은 생산 가능 연령인 15~64세 인구가 줄고 은퇴 연령인 65세 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매년 생산 가능 인구는 200만명씩 줄어 지난해 7,500만명이었고 은퇴 인구는 120만명씩 늘어 지난해 3,500만명을 기록했다. 1990년에 15~64세 인구가 8,500만명, 65세 이상이 1,500만명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은퇴 인구가 배 이상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취직해야 할 사람이 퇴직 대상보다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넘쳐나는 일자리 속에 줄어든 실업률이 결코 자랑거리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라면 완전 고용을 넘어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베 정부는 지난 3월 대졸자들의 취업률이 사상 최고인 97.3%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고민이 크다.
여기에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점도 아베 정부의 또다른 고민이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7월 가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하며 5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원래 고용이 늘어나면 사람들의 씀씀이가 좋아져 소비지수가 올라가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소비 지출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늘어난 은퇴 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아베 정부가 일본 사람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정부로서는 마냥 돈을 풀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고령화는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하는 등 정부에 여러 가지 부담을 준다.
아베 정부의 고민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할 수 없기는 고령화 인구가 늘어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당면 위험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인데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의 지적처럼 우리 정부의 저출산 및 고령화 대책은 지극히 근시안적이다. 이는 내년 정부 예산안만 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 반영된 내용은 저소득층에 국한했던 난임시술비 지원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1인당 최대 월 135만원을 주는 출산 전후 휴가 지원액을 150만원으로 증액,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제 도입 기업에 1인당 월 4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출산율이 얼마나 늘어날 지 의문이다.
상대적으로 고령화에 따른 지출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어선 내년 예산안 가운데 복지 예산이 130조원이며 이 가운데 66%인 85조원은 기초연금 지급 등에 쓰인다. 특히 심각한 고령화에 따른 국민연금 지급액이 올해보다 1조원 넘게 늘어나 약 20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은 저출산 대책을 전담하는 장관 자리까지 신설했다. 이 총재 말마따나 “저출산 문제는 지금 대책을 세워도 20, 30년 뒤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지금 서둘러야 한다.
장기적인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해 가장 고려돼야 할 사항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파악해 여기 맞는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출산을 미루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육아와 교육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수반되는 막대한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정권이 바뀌어도 시행할 수 있는 아이의 성장 주기와 맞물리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최연진 디지털뉴스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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