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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작 판치는 웹소설, 스타작가 의존을 넘자

입력
2016.09.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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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시절 판타지 등 인기

억대 연봉 작가도 나왔지만

실상은 스타 작품 베끼기 급급

양질 콘텐츠 보기 드물고

양산형 판타지 소설 등 넘쳐

새 작가 발굴해 질 높이고

게임, 영화 등 동시 기획해야

현재 웹소설 생태계는 무한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은 소수 스타작품만이 웹소설 성장의 주축이 되고 있다. 왼쪽부터 네이버 웹소설, 카카오페이지, 조아라, 북팔 홈페이지.
현재 웹소설 생태계는 무한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은 소수 스타작품만이 웹소설 성장의 주축이 되고 있다. 왼쪽부터 네이버 웹소설, 카카오페이지, 조아라, 북팔 홈페이지.

지난 4, 5년 웹소설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웹소설 플랫폼들이 매년 두 배 이상의 매출 증대를 올리고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는 작가층도 수십 명을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기업이 뛰어들어 시장을 넓히고 투자 자본까지 움직이면서 웹소설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현재의 웹소설 생태계는 무한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은 소수 스타 작품만이 성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은 1990년대 중반 PC통신이 활성화되던 시절부터 판타지, 무협 등 장르소설 특유의 참신한 세계관으로 대중소설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새로운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은 여전히 웹소설에서 독자가 가장 기대하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스타 작품 외에서 이런 요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에서 7,100만이라는 놀라운 조회수를 기록한 ‘나는 귀족이다’라는 작품의 경우, 최초로 레이드형 게임 요소를 차용한 판타지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몬스터를 잡으며 성장하는 레이드물이 쏟아져 나와 이제는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는 ‘회귀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회귀 코드가 공식처럼 사용된다.

새로운 소재나 설정이 인기를 끌면 한 차례 유행처럼 아류작들이 범람하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웹소설이 성장한 토대와도 관련이 깊다. 웹소설 플랫폼은 뜰만한 작품을 골라 선보이던 출판사 역할을 없애고, 작가가 독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는 출판 개념의 혁신을 통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독자에게 즉시 작품을 평가 받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깊이 고민하여 내놓기보다는 독자의 호응을 얻기 위해 검증된 소재를 차용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웹소설 플랫폼이 작가의 진입장벽을 낮춰 1차적으로 출판계의 혁명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어떻게 다수 작가들이 글을 더 잘 쓰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업계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기인 듯하다.

그 방법은 첫째, 작가 개인이 스스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작가층을 탄탄하게 만들거나 둘째, 대작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부터 작품을 함께 고민하고 생산해나가는 구조를 구축하여 웹소설 산업 자체를 성장시키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 현재의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하고 꾸준히 신진작가와 중진작가층을 지원해야 한다. 많은 신진작가들이 웹소설에 도전하지만 연재 초반에 주목을 받지 못하면 독자에게 외면 당하기 쉽고, 실제로 다수의 작가들이 초기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집필을 중단한다. 고심하여 쓴 작품이 장기간 반응이 없으면 결국 ‘팔리는 소설’ 방식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재와 설정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스타 작품의 요소를 변형해 쓰는 ‘쉬운 성공’을 노리게 된다.

작가 개인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작품을 써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웹소설 플랫폼에서도 재능 있는 신진 작가들이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집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매달 혹은 분기별로 일정 숫자의 신진작가들을 발굴해 지원해준다거나, 독자들이 주로 찾는 ‘투데이베스트’ 등의 랭킹을 매길 때 신작의 경우 가중치를 두는 방안도 있고, 조회수는 낮지만 로열티가 높은 작품을 추려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웹소설 생태계 자체에 또 한번의 혁신이 필요하다. 웹소설은 텍스트라는 본질적 특성상 이미지나 영상보다는 대중에게 소구하기 힘들고 그 결과 소비층이 한정돼 있다. 따라서 웹소설이 앞으로도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2차 창작물로 영향력을 확대해 지적재산권의 원천으로 자리잡아야 하는데, 이것은 작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다.

웹툰의 경우 거의 스토리 콘티와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비교적 영화ㆍ드라마 등의 영상화가 용이한 반면, 웹소설을 영상화하는 것은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웹소설이 영상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뿐더러, 영상화되더라도 원작의 기본 설정 외에는 대폭 수정하는 경우가 많아 웹소설의 판권 자체가 상당히 낮게 책정되고 있다.

웹소설이 지적재산권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웹소설, 만화, 영상, 게임 등의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써나가는 기획자의 거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즉, 웹소설 플랫폼이 기획사로 변신하거나 다양한 콘텐츠 산업이 이합집산하는 시장의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포맷별로 어떻게 변형시킬까를 고려해 각 포맷에 맞게 생산하되, 시기별 조율도 계획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먼저 웹소설을 출간해 주목을 끌고, 이것을 영상과 관련 상품으로 만들어 2차 붐업을 노리고, 후에 게임을 출시해 파급력을 극대화하는 등 일정에 따른 파급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을 해줄 기획자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작게는 작가와 감독 둘이서 구상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전문 편집인들이 팀을 만들어 가능성 있는 작품을 발굴한 뒤 작가와 함께 작품을 발전시켜나가는 ‘닥터링’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웹소설은 일반인 작가의 가능성을 끌어내어 대중소설을 풍성하게 만들면서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선보이려면 작가뿐 아니라 이런 업계의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이수희 조아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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