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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준 음료수, 마셔도 되나요?

입력
2016.09.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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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학생에 학점 인정 부정청탁 해당

성적ㆍ논문심사 등 관행 다수 불법 소지

시간강사ㆍ명예교수 제외 형평성 논란도

대학생이 강의 전 교수 탁자에 음료수를 올려놓으면 부정 청탁에 해당하는 걸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 시행이 3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학가가 혼란에 빠졌다. 교육기관이 전체 대상의 절반을 차지하는데다, 그간 사제 간에 이뤄지던 다양한 관행들이 불법이 될 소지가 커져 사제 관계마저 걱정할 처지라는 얘기가 나온다. 같은 상아탑 안에서 똑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더라도 법적 지위에 따라 법 적용 여부가 달라져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학교야말로 김영란법 시행의 혼란과 딜레마가 가장 심각한 현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 기관 중 대학 등 교육기관은 2만1,201개로 전체(4만919개)의 51.8%를 차지한다. 인원 수로 추산하면 전체의 28%인 70만명 가량이다. 이중 대학은 430곳 남짓이라 숫자상으론 적다.

하지만 법의 영향력만큼은 다른 교육기관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초중고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 촌지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분명한 상황이고, 교사에 대한 청탁이 부모를 매개로 이뤄지지만 대학은 사제 관계가 직접적이고, 성적 취업 논문심사 등 벌어지는 일들이 복잡다기하기 때문이다. 상아탑의 공공연한 일상이 갑자기 불법이 될 소지가 커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학의 관행은 재학 중 취업을 한 4학년에 대한 학점 인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총 수업 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출석해야 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 등 출석일수 기준이 있지만, 4학년 2학기에 취업하는 학생은 출석 기준을 못 채우더라도 리포트 제출 등으로 대체하면 학점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칙 상 출석기준이 있는데도 교수가 취업한 학생의 부탁으로 학점을 인정해주면 법 위반이다. 법에 규정된 부정청탁의 14가지 유형 중에는 학교 입학, 성적, 수상 등에서 법령을 어겨 처리 조작하는 것이 포함되는데, 학점 인정도 성적 처리에 해당한다는 것이 권익위의 해석이다.

법대로 하자면 스승이 제자를 신고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김영란법은 동일인이 처음 부정청탁을 할 경우 거절하고, 같은 청탁을 두 번째 하면 신고하도록 돼있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학점을 잘 달라고 떼 쓰듯 이야기하는 학생이 간혹 있는데, 아무리 법이라지만 어떻게 스승이 제자를 신고하느냐”고 한탄했다.

석ㆍ박사 논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타 대학 교수들에게 교통비 명목으로 50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식사 대접을 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가 된다. 논문 통과를 위한 금품수수에 해당한다.

학생들이 수업 전 탁자에 올려 놓은 음료수 한 잔조차 교수들이 맘놓고 마시기 어렵다. 원칙적으로 직무 연관성이 있는 관계에서는 대가성 여부나 법이 허용하는 한도와 무관하게 어떤 금품이라도 받으면 처벌 대상이다. 음료수 한 잔 정도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예외로 인정되지만, 그래도 성적을 잘 받기 위한 대가성 있는 금품이 아닌지, 절차대로 학점을 주고도 오해 받는 게 아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학생이 교수에게 주는 음료수, 합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라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국립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안 받고 안 만나는 것을 오히려 편하다고 여기는 교수도 상당수”라며 “결국 사제 관계가 많이 건조해지고, 대학사회의 인간관계 자체가 어색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어느 정도 사회 상규로 용인됐던 대학문화를 획일적인 법의 잣대로 그어버리면 기존 윤리감정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특히 서로 부정 청탁을 감시하고 의심하는 등 사제간 학생간 대학 구성원들을 감시그물망으로 묶어버리는 게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시간강사 겸임교원 명예교수 등은 학생을 가르치고 성적을 매기지만 법 적용에서는 제외돼 당장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각 대학은 청탁방지담당관을 지정해 권익위의 교육을 받는 정도로 준비하고 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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