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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2) 손목시계는 원래 여자의 것?

입력
2016.09.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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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패션을 대표하는 손목시계는 본래 여성의 액세서리였다.
남성패션을 대표하는 손목시계는 본래 여성의 액세서리였다.

오스카상 수상식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유명하다. 시상식에서 배우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혹은 액세서리를 착용했는지가 매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배우의 화려한 의상이 레드카펫을 물들이듯 남자배우의 경우 시계가 그 기능을 한다. 영화 ‘킹스맨’에서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 말로 진정 고귀한 것이다”란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며 영국산 수트의 ‘끝장매력’을 보여준 배우 콜린 퍼스. 그가 ‘킹스 스피치’로 201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의 패션에 관해 오른 기사는 그가 쇼파드(Chopard) L.U.C. XPS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의 손목시계가 여배우의 최상급 드레스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는 뜻일 거다.

남자의 액세서리는 시계 하나가 전부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대변한다. 그래서일까? 간결한 다이얼, 백금으로 깔끔하게 미장한 매끈한 스타일의 손목시계는 ‘얼굴을 내비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콜린 퍼스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한다. 우리는 손목시계를 남자패션의 완성이라고 치켜세운다. 시계는 여자의 옷과 달리 유행을 타지 않는다. 대물림을 통해 전승되며 과거의 기억까지 물려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남자들이 시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매력이라고 극찬한다.

과연 그럴까? 시계에 대한 남자들의 믿음은 역사적으로 보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한 마디로 남자의 품격과 시계를 연결시키는 건 시계산업의 오랜 마케팅의 결과다. 시계를 착용한 최초의 여성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그는 반지 위에 시계를 박아 사용했다. 당시 기술은 초정밀공학의 수준이 낮아 시계는 그저 장식용이었을 뿐이었다.

최초의 여성 손목시계는 1868년 헝가리의 한 백작부인을 위해 19세기의 애플이라 불리는 혁신기업 파테크 필리프가 만든 것이었다. 팔찌 형태인데 가운데 다이아몬드 대신 시계를 박아 넣었다. 이것을 리슬릿(wristlet)이라 불렀다. 시간 알림 기능보다 장신구에 가까운 패션제품이었던 셈이다. 1851년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장에서, 파테크 필리프는 최초로 첨단기술이 장착된 시계를 선보인다. 당시 회중시계는 부속품인 열쇠로 일일이 태엽을 감아 작동했던 것과 달리, 태엽 끄트머리를 돌려 시계태엽을 감는 장치였다. 이는 당시의 시계 공학적 관점으로 보면 혁신적 발명이었다.

파테크 필리프는 이 기술을 이용해 만든 시계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사한다. 황금과 청색 에나멜로 유려하게 처리한 돔 형태의 시계 케이스에 다이아몬드를 꽃무늬 형태로 박은 것이었는데, 시계의 무브먼트 부품은 순금으로 제작했고, 시간을 알리는 시침은 날씬하게 만들었으며, 빈 둥근 원형을 결합시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계는 브로치 형태로 옷에 핀으로 꽂아 고정할 수 있는 것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주얼리의 하나로는 손색이 없었다.

파테크 필리프는 이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여성용 소형시계를 특화하기 시작한다. 여성들에게 장신구인 리슬릿은 작을수록 인기를 끌면서 시계의 첨단기능화 요구는 더욱 거세어졌다. 이때만 해도 남자들은 줄이 달린 회중시계를 들고 다녔고, 손목에 찬다는 생각을 불쾌하게 여겼다. 남자들은 ‘여성들은 시간을 잴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노동을 통한 창조는 남성의 전유물이자 남성 고유의 덕목이지 여성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형 손목시계는 그저 여성들의 패션일 뿐, 남자들은 ‘손목시계를 차느니 치마를 입겠다’며 빈정거렸다.

하지만 여성 비하의 산물 손목시계는 우연한 기회로 시계 기술혁명의 선봉장이 된다. 바로 1차 세계대전이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는 말과 총검이 사라지고 독가스와 기관총의 시대를 맞은 현대전에서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늘날 손목시계가 남성을 완성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찬양 받게 된 계기는 ‘전쟁’이란 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시계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남자를 시계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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