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원장 긴급회의 대책 발표
윤리감사관실 기능 강화ㆍ확대
비위 드러나면 연금 감액 등
강력한 패널티 부과 추진도
“전관비리 방지엔 턱없이 부족”
대책 실효성엔 여전히 의구심
현직 부장판사의 뇌물수수 구속 사건으로 대법원장이 고개를 숙인 6일 전국 법원장들이 마라톤 회의 끝에 법관 비리 근절안을 내놨다. 법원 자체 감찰 기구를 강화해 비위 의혹 법관 첩보를 상시 수집하고, 문제가 제기되면 법관에게 소명자료 제출을 강제해 불응하면 징계 처분하는 등의 대책이 쏟아졌다. 법관의 양심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현직 법관이 구속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대법원은 이날 전국 법원장 33명과 법원행정처장 등이 긴급소집회의를 열어 논의한 ‘법관 윤리 제고와 윤리감사 강화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먼저 법원장들은 사법부 자체 감찰 조직인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의 기능 강화 및 확대 개편이 필수라는 데 뜻을 모았다. 대법원은 “상시적ㆍ예방적으로 문제 상황을 확인하고, 전국 법원과의 정보공유체계를 마련하는 등 사법부 내부의 법관윤리감찰 시스템을 강화하려면 필수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윤리감사관실은 2006년 1월 신설됐는데, 그 해 8월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감찰 인력 보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그러지 못해 사실상 10년간 제 구실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윤리감사관실은 지방법원 부장판사 1명과 평판사 2명, 그리고 법원 직원(4급) 1명 등 법원 내부 인사 4명으로만 구성돼 있다. 윤리감사관실은 올해 4월 말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지자 언론에 의해 의혹이 제기된 부장판사 3명에 대해 신속한 감찰에 착수하기보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며 관망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구속된 김수천 부장판사도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평판이 좋았는데,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하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특히, 법원장들은 비위 의혹을 받는 판사에 대해 소명자료 제출을 강제하거나 불응하면 징계를 하도록 하는 강력한 사실 확인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비위 논란의 중심에 선 법관의 양심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보인다. 이들은 “비위 당사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 절차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계좌 내역과 통화ㆍ문자메시지 내역 등)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구속된 부장판사도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계좌 내역 등 소명 자료 제출도 거부하다가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서야 상당 부분 금품수수 사실을 시인해 법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낸 자료로 의혹 해소 불충분 ▦추가 자료 제출 거부 ▦기간 내 미제출 등의 경우 소명자료 제출을 강제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징계 등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고려됐다.
아울러 비위가 드러난 법관에게 강력한 패널티를 부과하는 법 개정 요구 목소리도 나왔다. ▦정직 6개월 이상 징계 처분을 받은 법관은 공무원연금 감액 ▦금품 등 수수의 최대 5배 징계부가금 부과 등을 위해 법관징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직무와 무관한 비위도 곧바로 징계절차를 개시하도록 예규 역시 바꿀 계획이다. 이밖에 법원판 ‘제2의 진경준’을 막고자 위법·부정한 재산 증식이 발견되면 법관 연임에서 탈락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날 전국 법원장들은 7시간 남짓한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며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에 법원장들은 각종 대책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일부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법원장들은 “3,000명 가까운 법관 중 0.1%가 나올까 말까 한 개인의 일탈에 이런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면 일선 판사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될 게 분명하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반면 법원 밖에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대책만으로는 법관의 부정을 예방하고 전직 법관의 비리를 방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법관이 사건 관련자 등과 접촉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접촉시 이유불문 하고 징계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