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베이글녀’로 불릴 만하다. 아기 같은 앳된 얼굴이지만 육감적인 몸매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으니까. 지난 3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20년지기 영화계 동료인 펑더룬(42)과 ‘깜짝 결혼식’을 올린 중화권 스타 수치(40) 말이다.
수치는 1990년대부터 고 장궈룽, 리밍(50), 량차오웨이(54) 등과 호흡을 맞추며 아시아에서 ‘멜로여신’으로 불린 인기스타다. 또 가냘프지만 강단 있는 무술 실력은 청룽(62), 정이젠(49), 장첸(40) 등과 프로급 액션 연기를 견줄 만큼 화려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객 섭은낭’에서 수치는 고위관료의 딸에서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는 암살자 섭은낭으로 출연해 빼어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가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순탄했던 건 아니다. 사실 수치는 누드 모델 출신이다. 90년대 파격적인 누드 화보로 주목 받으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의 첫 영화 데뷔작이 에로영화 ‘옥보단2-옥녀심경’이었던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이후 장궈룽과 출연한 ‘색정남녀’(1996)를 비롯해 ‘성월궤도’(1996), ‘밀도성숙시’(1997) 등 노출 있는 파격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마 리밍과 연인으로 나온 ‘유리의 성’(1998)을 시작으로 ‘미소년지련’(1998) ‘사랑은 방울방울’(2001) 등에서 청순하고 귀여운 매력을 뽐내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자객 섭은낭’ ‘서유기’ ‘중화영웅’ ‘풍운’ 등을 통해 무협액션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전천후 배우로 사랑 받는 수치.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는 수치의 추억 영화들을 짚어봤다.
● 색정남녀(1996)
‘옥보단-옥녀심경’으로 데뷔해 에로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았던 수치가 후속작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원색적인 제목처럼 보이는 ‘색정남녀’지만 실은 고 장궈룽과 펼치는 진한 멜로 연기가 압권인 영화다.
‘색정남녀’는 포르노 영화를 연출하게 된 아성(장궈룽) 감독과 에로배우로 나선 몽교(수치)의 사랑을 전한다. 두 편의 영화로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비난을 들은 아성은 일순간 무능력한 감독으로 전락한다. 그것도 모자라 경찰인 애인 메이(모원웨이)에게 얹혀사는 처지다. 그러다 저예산으로 포르노 영화를 제작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그는 옷 벗는 게 싫다는 배우 몽교를 설득해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남녀 관계가 그렇듯 온종일 영화 작업에 몰두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점점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수치는 이 작품에서도 과감한 노출 연기를 감행했다. 고작 스무 살이었던 수치와 스무 살 차이가 나던 장궈룽과의 나이를 뛰어넘은 파격 연기는 국내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수치는 이 영화로 연기력도 인정 받아 그 해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신인 배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 유리의 성(1998)
수치와 리밍이 이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첨밀밀’을 보듯 두 사람은 가슴 저린 감성 멜로로 관객의 눈시울을 적신다. 수치와 리밍은 이 영화를 통해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해 7년 간 열애를 했다.
영화는 1996년의 마지막 날 영국 런던 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항생(리밍)과 연루(수치)를 담으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전복된 차 안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들은 부부도 연인도 아닌, 그저 불륜 관계의 남녀일 뿐이다. 항생과 연루는 각각 미국과 홍콩에 가족이 있다. 대학시절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항생이 학내 시위로 체포되는 사건을 계기로 헤어지게 된다. 이 사건 때문에 항생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두 사람이 멀어지게 된 것.
서로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결국 각자 결혼해 다른 사람의 아내와 남편이 돼 있다. 그렇지만 운명은 둘을 갈라놓지 못했다.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항생과 연루.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고는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빠져든다. 그렇게 20년 전 감정을 잊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한날 한시에 죽음을 결심한다.
최루성 강한 멜로로 대중을 사로잡은 수치는 이 영화를 통해 에로배우라는 ‘딱지’를 떼버린다. 특히 수치는 영화 속에서 ‘트라이 투 리멤버’를 불러 노래실력도 자랑했다. 농염한 매력만 있는 게 아니라 청순함과 지적인 이미지가 공존한다는 걸 보여주며 ‘멜로 여신’으로 거듭난다. 이후 량차오웨이와 함께 ‘사랑은 방울방울’에 연인으로 나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도 도전했다.
● 트랜스포터(2003)
영화 ‘분노의 질주’ ‘트랜스포터’ ‘아드레날린 24’ 하면 떠오르는 ‘상남자’ 제이슨 스태넘과 수치의 만남부터 화제였다. 화끈한 액션배우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스태넘과 무협활극의 정통무술을 넘어 맨손 액션도 문제없어 보이는 수치의 조합은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영화에서 스태넘은 범죄조직이 의뢰한 물건을 비밀리에 운반해주는 ‘트랜스포터’로 불리는 프랭크를 연기한다. 어느 날 한 남자의 의뢰를 받고 가방을 운반하던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 안에서 중국 여인 레이(수치)를 발견하지만 그대로 의뢰인에게 전달하고는 새롭게 운반해야 할 가방을 받는다. 그러나 건네 받은 가방은 프랭크를 처치하기 위한 폭발물이었다.
의뢰인을 습격한 프랭크는 레이를 구하고, 그녀에게서 의뢰인이 수백 명의 중국인 밀입국자들을 암거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프랭크가 혼자 중국인들을 구출하려는 레이를 돕기로 하면서 거대 범죄조직과 한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수치는 스태넘과 함께 범죄조직에 맞서면서도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신비로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멜로와 액션연기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여배우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영화다.
● 조폭마누라 3(2006)
에로배우와 멜로여신을 거쳐 액션스타로 자리잡은 수치는 한국영화 ‘조폭마누라 3’에서도 그 실력을 드러낸다. 그는 ‘조폭마누라’ 1편과 2편의 주연이었던 배우 신은경 대신 3편의 주인공으로 나서며 한국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영화는 홍콩 최고의 범죄조직 보스의 딸 아령(수치)이 조직 간 세력 다툼이 벌어지자 한국으로 피신을 오는 설정이다. 이때 한국의 동방파 보스는 넘버3인 기철(이범수)에게 아령의 안전을 맡긴다. 기철은 아령의 신분을 모른 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변처녀 연희(현영)를 불러 통역을 부탁한다. 그러나 아령의 목숨을 노린 킬러가 홍콩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기철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조직의 보스 딸인 아령이 자신을 보호하는 무술 실력을 갖춘 건 기본. 맨손으로 킬러를 때려 잡는 것도 모자라 검술까지 화려하다. 수치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해하려는 킬러들을 무찌르며 여장부다운 면모를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필한다.
수치와 한국의 인연은 ‘조폭마누라 3’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영화 ‘버추얼 웨폰’에서 송승헌과 연인으로 등장하기 때문. 킬러로 활동하는 린 역의 수치가 송승헌과 사랑에 빠져 킬러생활을 접으려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송승헌이 짧게 등장하긴 하지만 수치와의 ‘비주얼 커플’연기만은 오래 남는다. 또한 수치는 2005년 홍콩영화 ‘서울공략’에서 미모의 여도둑 JJ 역을 맡아 한국에서 촬영한 것은 물론 최여진 김지석 등 한국배우들과도 멋진 호흡을 보여줬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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