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격차 해소” 목청 높여
유승민 “경제적ㆍ법적 정의”
원희룡 “사회적 대타협” 등
진보 쪽 의제를 오히려 선점
차기 대선을 1년 3개월 앞두고 여권 잠룡들 사이에서 대선 의제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주자들은 정통 보수를 뛰어넘어 진보 진영에서 나올 법한 화두까지 던지고 있다. 기존 우파의 프레임에 갇혀선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해법을 내놓을 수도, 나아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들어 ‘격차해소’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정책 공부모임인 ‘격차해소 경제교실’도 만들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7월 14일 당 대표 당선 2주년 기념행사에서 던진 사실상의 대선 출사표에서 “지금의 시대정신은 격차해소”라며 “이를 위해서 공정한 경제체제, 공정한 사회체제를 구축해 조화로운 생태계로 거듭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격차해소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강조해온 시대과제다. 새누리당 내 대선주자 가운데선 가장 정통 보수로 여겨져 온 김 전 대표의 바뀐 행보에 여권 내에서조차 파격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1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본보의 ‘2017 도전하는 리더들, 시대정신을 말하다’ 대담에서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구상도 모두 보수의 틀을 탈피한 것이었다. 지난해 4월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로 ‘신보수선언’ 평가를 받았던 유승민 의원은 ‘정의’를 강조했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르게 바꾸려면 경제적ㆍ법적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 의원은 아예 “진보가 제시해 온 가치 중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면 열린 보수가 진보의 합리적인 생각을 수용할 수 있다”고 ‘사고의 연대’를 언급했다.
남경필 경기지사 역시 과거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을 진두지휘 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경제민주화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했다. 남 지사는 “대기업 규제 중심의 경제민주화는 반쪽짜리”라며 “시장의 부당한 불공정 요소를 정부가 해결해주는 ‘공유적 시장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엔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모병제까지 들고 나와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공존’, 원희룡 제주지사의 ‘사회적 대타협’ 역시 사회의 기득권층이 더 많이 내놓고 양보해야 가능한 의제들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권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의제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오히려 진보 의제를 선점한 모양새”라며 “기존의 보수적인 프레임으로는 현재 한국사회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반증”이라고 풀이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박근혜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정통보수를 뛰어넘으려는 움직임은 더욱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최근 들어 ‘반공보수’로 회귀하는 박 대통령과는 반대로 진보 강화 싸움에 뛰어 들었다”며 “기존 새누리당 핵심 지지층과 중도ㆍ진보층을 동시에 설득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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