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링홈' 릭돌ㆍ초클리 감독
달라이라마 호위 아버지 따라
인도ㆍ네팔 거쳐 뉴욕 정착한 릭돌
망명정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
고향 흙 20톤 옮기기 프로젝트
2만弗 예상 비용 10만弗로 늘고
中 첩보ㆍ검문 피해 ‘땅 밟기’ 성공
1세대부터 어린아이들까지 감동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들은 슬프다. 슬픔의 무게가 남다르다. 아버지는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숨졌다. 중국이라는 장벽에 막혀 돌아갈 수 없는 조국, 티베트. 아버지는 1959년 달라이라마를 호위하며 티베트를 탈출했다. 아버지의 인생유전을 따라 아들의 삶도 부평초였다. 인도와 네팔을 거쳐 미국 뉴욕에 뿌리내렸다. 소수자의 삶은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소질을 일깨웠다. 티베트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미술작품들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망명객의 서러운 삶은 그저 아버지의 것이라 여기던 아들 텐징 릭돌(34)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망향의 아픔을 절감했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에게 고향을 선보이겠다고 결심했다. 티베트의 흙 20톤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 옮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하게 된 것이다. 고향 땅을 다시 밟고 싶거나 한번도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약간의 시간과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 생각했던 계획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브링홈: 아버지의 땅’은 5년 전 릭돌의 분투를 담고 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으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서글픈 향수가 가슴을 누른다. 최근 영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을 찾은 릭돌과 감독 텐진 체탄 초클리(34)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릭돌과 초클리는 다람살라 망명정부가 세운 초등학교의 친구사이다. “3학년 때 책상을 나눠 썼지만 그리 친하지는 않았던”(초클리) 두 사람은 거의 20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했다. 일찌감치 뉴욕에 정착한 릭돌과 달리 초클리는 인도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뉴욕으로 향했다. 티베트인 모임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브링홈’을 함께 하게 됐다.
릭돌은 “초클리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든 단편영화의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며 “‘내가 영화를 잘 모르지만 영화를 만든다면 너랑 할게’라고 이미 말했다”고 전했다. 초클리는 “처음엔 영화를 만들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며 “릭돌이 혹시 잘못되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같은 곳에 릭돌이 나쁜 의도를 지니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모든 순간을 촬영하려 했다”고 말했다.
릭돌과 초클리는 티베트와 인접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거사’의 전진기지로 택했다. 릭돌의 친척을 비롯해 티베트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고, 무엇보다 또 다른 초등학교 동창 톱텐이 ‘행동대장’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톱텐은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선 지인들에게 휴대폰 문자를 보냈을 때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초클리와 함께 가능하다고 답한 친구”(릭돌)였다.
두 사람은 볼펜형 카메라 등 촬영 장비를 갖추고 카트만두로 건너갔으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카트만두마저 중국의 첩보활동이 워낙 왕성해 섣불리 일을 벌일 수 없었다. 릭돌과 톱텐이 흙을 옮겨줄 브로커와 접선하고, 흙을 옮길 구체적인 동선을 그려가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한다. 단순히 흙을 옮기는 일인데도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보안과 긴장이 수반됐다. 흙을 실은 트럭을 바꾸며 50개의 검문소를 거쳐 흙 포대가 다람살라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17개월이 걸렸다. 릭돌은 “가장 중요한 일은 톱텐 등 일에 관여한 사람들의 안전”이었다며 “흙을 빼내오는 과정 자체가 망명을 위해 고향을 탈출하는 티베트인들의 역정과 비슷했다”고 돌아봤다. 초클리는 “일이 성사 직전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톱텐이 전화로 물에 빠져 죽겠다고까지 했다”면서 “(안전 때문에)함께 다니지 못해 그런 중요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이 늦어지면서 2만달러(약 2,200만원) 정도면 되리라 생각했던 흙 운반비용은 10만달러(1억1,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릭돌은 “에이전트에게 전화해 그림 좀 팔아달라고 해서 돈을 일부 마련했고, 아버지가 진짜 위급할 때 쓰라고 물려주신 금괴도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거야말로 위급상황’이라고 말씀 드리고 허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다람살라에 온 티베트 흙은 릭돌과 초클리, 톱텐이 다녔던 초등학교 농구장 바닥에 깔렸다. ‘고향 땅 밟기’ 행사 전날에야 기습적으로 플래카드를 달았다. 방해공작이 있을까 우려해서였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오래 전 고향을 떠난 뒤 다시 돌아가지 못한 나이든 티베트인들은 물론이고 티베트의 실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세대까지 감격에 겨워했다.
고향 가져오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뒤 세 소꿉친구의 삶은 달라졌다. 초클리는 “그 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티베트 난민의 정치적인 면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삶을 더 자세히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릭돌은 “망명 1세대를 만나 티베트의 현대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톱텐은 신변 불안으로 네팔을 떠나 미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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