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면서 제1 야당의 얼굴이 되었다. 보수 여당의 대표로 호남 출신 이정현 의원이 뽑히는 등 여의도 정치권은 연이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여성 대통령과 여성 제1 야당 대표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 상황이다. 과거에도 여성 당 대표는 존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아 국회의원 선거를 이끌었다.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한명숙 전 의원도 국무총리와 여성 당 대표의 위치에 올랐었다.
돌이켜보면 여성은 유권자의 절반이나 차지하지만 정치 발전 과정에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왕족의 일원으로 여왕이 되어 통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최고 권력은 남성들의 독차지였다. 미국이나 서구 유럽 등 비교적 여성 인권을 중시해온 지역도 여성 참정권이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어진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이다. 여전히 의원이 되는 숫자는 남성들에 비해 소수에 불과하다. 20대 국회의 300명 의원 중에서 여성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의원연맹(IPU) 평균에도 못 미친다. 여성들은 과거 제대로 된 여성주권을 누릴 환경과 여성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세상은 변했다. 세계 각국에서 여성들의 약진은 눈부시고 놀랍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 가능성을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여성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중심에 서 있다. 브렉시트 위기 탈출을 주도하고 있는 신임 영국 총리도 여성인 테리사 메이다. 핀란드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 너무 인기 있는 지도자라 퇴임 후 4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등 수많은 여성 대통령과 총리가 등장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나라별 사회적 인식이나 정치적 시스템의 차이에 따라 더 온전하게 양성평등을 누리는 곳도 있고 아직도 편견과 성적 차별에 시달리는 곳도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는 건 과거와 비교할 때 불가능한 상황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 산 수치 여사도 국가수반은 아니지만 파란만장한 시련을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 역시 사회적 편견 또는 남성 위주 인식일 수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여성 주권은 더 청렴하고 공평하며, 여성리더십은 더 소통이 활발하고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다.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발견하게 된다. 비리 의혹으로 탄핵당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퇴임 후 부패 혐의로 기소된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 군부 쿠데타로 직을 상실한 잉락 전 태국총리 등은 기대를 많은 받은 여성 리더십이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들은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후광을 입었거나, 가족관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이라 더 유감스러운 결말이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정치지도자라면 국민과의 ‘소통’이나 ‘도덕성’에 대한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성별 구분은 무의미하다. 어떤 지도자이든 소통과 도덕성이라는 기본적 덕목 위에 국민으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는 통치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보여주는 소통은 여성이기에 보여주는 소통이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발휘하는 놀라운 소통 능력이다.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과 여성 당 대표 사이의 소통과 리더십은 어떤 결말을 연출할지 시나브로 흥미진진해진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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