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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나도 써 볼까? 글쓰기 배우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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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나도 써 볼까? 글쓰기 배우기 열풍

입력
2016.09.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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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 덕분에 누구나 자신만의 매체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대가 됐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의식주에 근접해 가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자리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 덕분에 누구나 자신만의 매체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대가 됐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의식주에 근접해 가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자리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페북 등 개인 매체 보편화 되며

유례없는 ‘쓰기 폭발’ 시대 도래

“나도 글 잘 쓰고 싶다” 욕구에

관련 서적ㆍ강의 ‘문화시장’ 형성

“쓰기 계속하면 읽기도 자극

텍스트 소비 활성화 전망까지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사업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일하는 김소영(37)씨는 토요일 오전이면 서울 마포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지난해 처음 독서토론 강좌를 듣기 시작해 올해엔 ‘내 이야기’를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소설가 서유미씨가 강의하는 ‘자전적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내 생각도 제대로 못 쓰면서 남의 것만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선택한 강좌는 자신의 얘기를 직접 쓰고, 남들과 공유하는, 표현과 소통의 즐거움을 안겨줬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같은 인터넷 글들을 항상 보고 있거든요. 일기 같은 자기 이야기부터 영화나 음악, 책에 대한 리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글을 쓰잖아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죠. 매력 있고.” 깔끔하고 논리적인 김훈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는 김씨는 부지런히 글쓰기를 배워 독립영화 평론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이메일, 페북…‘쓰기 폭발‘ 시대

학창시절의 종료와 함께 생애사에서도 종결되곤 했던 글쓰기가 의식주에 근접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로 귀환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책을 죽였다는 장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유사 이래 가장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저술 전문가 클라이브 톰슨이 2013년 ‘생각은 죽지 않는다’(알키)라는 책에서 입증했듯, 미국에서만 사람들은 매일 1,540억통의 이메일을 쓰고, 5억개가 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160억개의 단어를 페이스북에 쓴다. 우편제도가 발달한 1860년에 미국인 한 사람이 쓰는 편지가 한 해 평균 5.15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가히 ‘쓰기 폭발’의 시대다. 그간 사람들은 읽기에만 주력해 왔지만, 이제는 쓰기가 우선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쓰기 위해서 읽고, 읽어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고, 써도 쓰는 사람에게 쓴다. 20세기 초 블룸즈버리 그룹 같은 시대다”라고 한 톰슨의 말은 대한민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유사 이래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 글을 썼던 적은 없다.

쓰기 폭발이 유발한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글쓰기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었다. 명망가와 문필가, 장삼이사의 범인이 너나없이 필자로 나서 글쓰기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책들을 쏟아내고, 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좌는 모두가 지갑을 닫는 경제불황기에도 성장세를 유지하거나 침체를 모른다.

지난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문장강화' 강좌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좋은 문장을 향한 갈증을 풀기 위해 군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수강생도 있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지난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문장강화' 강좌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좋은 문장을 향한 갈증을 풀기 위해 군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수강생도 있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글쓰기 분야의 시장개척자라 할 만한 한겨레교육문화센터는 1995년 설립 후 개별 강좌로만 운영해오던 글쓰기를 2007년 별도 카테고리로 독립, 확대했다.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문학 글쓰기와 보통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글쓰기 일반을 분리해 강좌를 증설한 결과, 매출이 200% 증가했다. 2013년도에는 ‘논객’과 ‘평론가’를 꿈꾸는 필사들을 겨냥해 매체 글쓰기 과정을 글쓰기 일반에 신설, 150% 매출 증가라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후 현재까지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내년 초에는 글쓰기 강좌들만 따로 빼서 글쓰기센터로 독립, 운영할 계획이다.

김영우 한겨레교육 미디어교육본부 팀장은 “영상이나 사진 같은 다른 강좌들이 끊임없는 부침을 겪었던 데 반해 글쓰기는 성장이 가팔랐고 현재도 꾸준하다”며 “자기계발이나 교육 분야에 가장 먼저 지갑을 닫게 되는 분위기에서도 이 정도면 상당한 시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글쓰기 일반은 문학 글쓰기와 달리 수요의 저변이 넓다”며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직업적인 욕구보다는 개인의 일상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려는 욕구가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쓰기 과정으로 유명한 상상마당 아카데미는 ‘홍대 문화권’의 영향으로 영상이나 사진 같은 매체강좌들이 더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글쓰기 수강생의 규모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글쓰기 일반 서적 중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책들. 왼쪽부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서민의 '서민적 글쓰기'.
글쓰기 일반 서적 중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책들. 왼쪽부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서민의 '서민적 글쓰기'.

글쓰기 책 불황을 모른다

책이 안 팔린다는 출판계의 아우성 속에서도 은근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아이러니한 범주가 글쓰기다. 특히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2014년 이후 글쓰기 책은 독립범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3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글쓰기 일반’ 서적의 판매 점유율은 15%로 10년 전 동기 대비 약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년 1월부터 8월까지 10년간 팔린 ‘글쓰기 일반’ 서적을 100으로 놨을 때, 2007년 4.5%였던 점유율은 2011년 9.9%, 2014년 14.3%, 2015년 17.4%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4년은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가 베스트셀러가 된 해이며, 2015년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서민적 글쓰기’(생각정원) 등 스타 작가들의 책이 잇따라 출간된 해다. 두 해 교보문고의 이 카테고리 판매신장률이 무려 68.1%(2014), 21.8%(2015)였다. 조정 국면에 들어간 올해는 8월 현재 13.7% 줄어든 판매신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유명 저자들의 글쓰기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출간돼 현재 15만부가 팔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유시민을 글쓰기 분야의 구루로 만들며 유사 서적의 잇단 출간을 추동 중이다. 올 5월 출간된 글쓰기의 태도에 관한 에세이 ‘표현의 기술’(생각의길) 역시 석 달 만에 7만부가 팔렸으며, 공부의 한 방법으로서의 글쓰기와 그 노하우를 제안하는 ‘유시민의 공감필법’(창비)도 최근 출간됐다. 서인찬 생각의길 주간은 “저자의 힘도 있지만 일상의 글쓰기가 일반화되고, 생활에 절대적 요소로 맹렬하게 필요해진 시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누구나 자기 의견을 공표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의 형태로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시대에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만인 의견개진’의 소셜 미디어 시대는 향후 텍스트로의 귀환을 촉발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만인 의견개진’의 소셜 미디어 시대는 향후 텍스트로의 귀환을 촉발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책은 읽지 않으면서 글만 쓰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다. 하지만 쓰기는 읽기를 유발하게 마련이라는 낙관론이 더 승하다. 글쓰기 강좌를 듣는 김소영씨는 “읽기가 안 된 사람의 글은 적절한 인용도 없고, 결론만 앞서 있는 경우가 많지 않냐”며 “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독서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서인찬 주간도 “지금은 과도기적 상태”라며 “우물에 물이 없으면 길을 수 없는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콘텐츠를 채우기 위한 텍스트의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폰이 책을 멀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모든 국민이 텍스트를 보는 사회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어마어마한 기여이고 문자 소비의 혁명인 거죠. 물질로서의 형태가 꼭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반드시 텍스트를 읽게 될 거라고 봅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글쓰기 책 판매 순위

(2016.1.1~8.31 교보문고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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