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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회보장제

입력
2016.09.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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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매우 당연한 일인 양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긍이 가지 않는 일이 있다. 사회보장기금 얘기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기금은 약 17조원, 산재보험기금은 약 12조원, 고용보험기금은 8조원이 넘게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쌓인 고용보험기금과 산재보험기금은 민간 금융회사들에 자산운용서비스가 맡겨져 있는 상태다. 정부는 건강보험공단이 자체 운영하는 건강보험기금까지 포함하여 사회보장기금들을 전부 금융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한다는 입장이다. 사회보장기금을 기존 금융상품은 물론 부동산 투자나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목적은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고, 내세운 명분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후세대 부담을 더는 것이라고 한다.

재정 건전성, 지속가능성, 후세대 등 좋은 말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여기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되지는 않는다. 솔직히 부조화마저 느껴진다. 왜냐하면 원래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은 기금을 많이 쌓아놓고 운영하는 제도가 아니라 연 단위로 재정 운영을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즉, 거둬들인 보험료 규모에 맞게, 그 해에 국민이 겪는 실업, 건강문제, 산업재해 등에 대해 적절한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원래 제도 목적이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법에서 누적흑자는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사회보장제도에 수년에 걸쳐 큰 기금을 쌓아 왔다면, 먼저 제도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검토의 핵심은 실업과 질병과 산재에 대한 사회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이다. 고용 불안정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응하라고 만든 고용보험은 고용 불안정, 청년실업 문제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 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실업급여 수준은 뒷걸음쳐, 그 최대지급액마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이다. 실업급여율 인상이 이루어져도 최대지급액이 그대로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도 3~8개월에 불과한데, 그나마 30세 미만 노동자는 대체로 3개월 이내이다. 실업급여 지출을 덜 하고 고용보험기금을 쌓았다고 자랑할 게재는 아닌 듯하다.

대통령 선거의 복지공약과 달리 건강보험 보장 수준은 이번 정부에서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의료비 중 약 40%는 개인의 몫이며, 입원 진료에 대한 보장은 OECD 꼴찌에 가깝다.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을 겪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 역시 여전히 상당수에 달한다. 산재 보장 역시 아직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지난 8월 말 결국 산업재해 판정을 받지 못한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사례는 물론,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많은 산업재해 불인정 사례들은 취약한 노동자들일수록 산재보험을 통해 제대로 보장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업이나 산재를 당하면 사회보험을 통한 보장을 당연히 기대하지만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들은 이런 기대를 계속 배반하면서 기금을 쌓았다. 낮은 수준의 보장을 대가로 사회보장기금을 대규모로 쌓아놓은 꼴이다. 사회보장기금의 낮은 수익률을 문제 삼기 전에 제대로 된 보장을 위해 할 일이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기금의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밀고 나가는 정부 태도는 우려스럽다. 재정과 수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사회보장제도의 본래 임무를 계속 방기하도록 할 것이기에 말이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고한 ‘재정건전화법’에서도 이 태도는 일관된다. 우리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회보장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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