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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방학은 옛말…이제는 대행서비스까지

입력
2016.09.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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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방학을 아십니까? 예전 제주에서는 벌초방학이라 하여 음력 8월 초하루에 학생들에게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하라며 하루 임시방학을 했었다. 집안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는 날 효행사상을 고취한다는 의미에서 방학을 실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무너지면서 평일엔 어른들도 직장에 출근하기 때문에 휴일에 벌초를 하면서 방학도 없어졌다. 요즘은 집안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8월 초하루 전후 휴일에 진행한다.

일가 친족이 모두 모이는 제주의 모둠벌초
일가 친족이 모두 모이는 제주의 모둠벌초

벌초는 조상 묘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한다는 의미다. 제주에서는 벌초를 소분이라고도 부르는데 보통 8월 절기가 시작되는 시점, 즉 백로로부터 추석 이전에 마무리한다. 그 중에서도 8월 초하루에 일가친척이 모여 선묘에 벌초하는 것을 ‘모둠벌초’ 또는 ‘도소분’이라 부른다. 추석 당일 선묘를 찾아 성묘를 하는 풍습이 없는 제주에서는 벌초가 가장 큰 집안 의례인 것이다. 문중벌초 성격의 모둠벌초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집안의 모든 성인 남자가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때는 육지의 친족은 물론 일본에서 살아가는 친족까지 참여하기도 한다. 추석날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용납하지만 벌초에 빠질 경우 친족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한다. 집안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불참자에게 일종의 회비를 징수하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모둠벌초는 혈연관계를 확인하고 공동체인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인 것이다.

제주의 벌초 모습
제주의 벌초 모습
벌초 후 묘제를 올리는 모습. 벌초는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벌초 후 묘제를 올리는 모습. 벌초는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모둠벌초가 끝나면 함께 묘제를 지내는데, 그 이후에 각기 그 후대 조상들의 묘제 벌초를 한다. 도로가 많이 개설된 요즘에는 선묘 인근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서너 시간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더했다. 한라산국립공원 구역에도 많은 묘들이 있는데, 이 경우 그 후손들은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사전 신고해 벌초에 나선다. 이럴 땐 묘소 1기를 벌초하는데 기본 하루가 소요되는데, 그럼에도 매년 거르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아들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벌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제사와 명절이 중요하기는 하나 벌초에 미치지 못한다. 오죽했으면 벌초를 하지 않으면 조상들이 추석명절에 너울을 쓰고 온다고 할 정도다. 잡초 덤불을 쓴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확인이 어려운 제사와 달리 벌초를 하지 않을 경우 남들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더더욱 신경을 쓴다는 얘기다.

모둠벌초 풍습도 최근 들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예전과 달리 자식을 많이 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객지에 나가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 새롭게 등장한 문화가 벌초 대행서비스다. 모두가 고향을 떠나 아예 벌초할 후손들이 없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때 벌초를 대신해 주는 제도다. 농협과 산림조합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벌초 대행서비스는 묘소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와 묘지 이력 관리체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또 다른 변화양상으로 벌초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의 선묘를 가족묘지라는 이름으로 한곳으로 모으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농지 잠식 등을 이유로 매장 풍습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풍수지리학에서는 명당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만큼 조상을 모시는 일은 정성을 다하는 효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전의 벌초문화와 비교할 때 묘지 이장과 벌초 대행서비스는 그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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