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경제포럼서 ‘사드ㆍ북핵 외교’ 시작
靑 “한러 정상회담서 사드 등 놓고 우호적으로 의견 교환”
朴 “北도발 장애 제거되면 남ㆍ북ㆍ러 협력 재점화”
푸틴 “남ㆍ북ㆍ러 공동 프로젝트 참여 희망”
박근혜 대통령이 3일 러시아에서 ‘사드ㆍ북핵 외교’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날 개막한 동방경제포럼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도입의 정당성을 러시아에 직접 설명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거듭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받아들이고 도발적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위협하고 핵 선제공격까지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한 탄도미사일 위협은 불과 몇 분의 사정거리에 있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자위적 조치임을 강조해, 러시아의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를 달래려 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정부라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 보호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국제사회가 과거와 다른 시급성과 강력한 결의를 갖고 북한의 핵ㆍ미사일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동북아 지역 뿐만 아니라 전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이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는 사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를 비롯한 중요한 국제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우리는 평양이 핵 보유국 지위를 스스로 주장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사드 문제를 포함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전략적 안전 문제 와 관련해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건설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며 “두 정상은 북핵 불용 입장 하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회담 성과를 설명했다.
앞서 각국 정상들이 토론을 벌인 포럼 전체 세션에서 박 대통령은 “안보리 대북 결의 2270호와 다른 대북 결의를 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북한이 핵 포기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해 대북 공조체제에서 이탈하려 하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시간 벌기를 해주는 대화는 안 된다”며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오게 하자는 것이 대북 압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상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세션 좌장을 맡은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북핵 문제와 유엔 대북 결의에 대한 의견을 푸틴 대통령에 물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행하며 도발적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우리는 북한과의 굉장히 다양한 채널이 있는데, 이를 활용해 첨예한 국면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모든 도발적 행동에 반대하며, (한국 전쟁 같은) 이런 전쟁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면서 “북핵에 대해 우려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적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포럼 기조연설에서 경제 유인을 제시하며 러시아의 대북 공조 참여를 거듭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때문에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포함한 남ㆍ북ㆍ러 3각 협력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북한의 도발이라는 장애가 제거되면 남ㆍ북ㆍ러 3각 협력이 보다 포괄적인 사업으로 재점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매개로 한·러·일, 한·러·중 등 다양한 소다자 협력도 본격화될 수 있고, 전력, 철도, 에너지 등 동북아 지역 인프라망 연결을 촉진해 역내 공동번영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포럼 전체 세션에서 “교통과 철도 에너지 분야에서 남ㆍ북ㆍ러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북한을 “유라시아 대륙 내 핵심적 단절고리이자 최대 위협”이라 부르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스스로를 ‘동방의 핵 대국이라고 부르며 핵 선제공격을 위협하고 핵·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 우리가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면 머지않아 북한의 핵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면 북한에 단호하고 일치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러시아ㆍ중국의 대북 공조체제 복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 외교에도 힘을 실었다. 박 대통령은 한국무역협회와 러시아 연방상공회의소가 함께 개최한‘한러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 참석해, 축사에서 “한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연구가 FTA 체결을 위한 본격적 협의로 발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주도로 2015년 1월 출범한 유라시아 경제연합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 다섯 개 나라의 경제 공동체로, 인구는 1억8,000만명에 역내 국내총생산(GDP)은 1조6,000억달러다. 박 대통령은 “한국과 EAEU가 사람과 물자, 자본이 자유롭게 교류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면 양국 경협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령은 또 “모든 야채에는 제철이 있다”는 러시아 속담과 “지식이란 행동으로 옮겨져야 가치가 있다”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양국 경제협력의 속도전을 강조했다.
블라디보스토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