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의원이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에 당선됐다. 그는 과거 열린우리당 분당,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찬성 등으로 친노 진영에 공격을 받았다. 이후 삼보일배로 공개 사과했지만 친 노무현 진영의 반감을 쉽게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그의 당선은 친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하는 친 문재인 진영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었다. 그의 어떤 점이 불편했던 친노 진영까지 돌아서게 만들었는지 짚어 봤다.
추 대표는 1958년 10월 대구에서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한양대 법학과를 나온 그는 1982년 사법시험 통과 후 춘천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일했다. 판사 시절 그는 1986년 1,500여 명이 참가한 건국대 점거 농성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신청한 책 100여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 소신 있는 판사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추 대표는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고 제 15, 16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돼 직설적이며 매서운 의정 활동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그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원서를 쓴 날이 1995년 8월 27일로, 더민주당 대표에 당선된 날짜와 같다. 평당원으로 입당해 21년 만에 대표직에 오른 것이다.
추 대표는 대통령 선거 관련 활동 때문에 몇 가지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 당시 이른바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대구에서 지역감정에 맞서 선거 운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보여준 강한 돌파력 때문에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2년 대선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선대위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선거운동자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칭을 얻었다. (☞ 관련기사 )
하지만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하고도 1년 만에 노 전 대통령과 갈라서며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이유는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DJ 정부의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DJ를 배신했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추 대표는 찬성표를 던지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 탄핵 추진을 막으려고 했다. 2004년 3월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하자 당시 최고위원이던 추 대표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너 혼자 잘났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결국 그는 당론으로 정해진 일을 거역하지 못하고 탄핵에 찬성표를 냈다. 그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 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숯댕이(범죄자)가 검댕이(노무현)를 나무랄 수 없으니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찬성) 표를 드리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그러나 노 전 대통령 탄핵이 부결되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결국 속죄의 의미로 ‘3보1배’를 하며 옛 민주당 구하기에 나섰다. 그렇지만 그는 제 17대 총선에서 낙선하며 탄핵사건의 여파를 혹독하게 겪었고 2년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추 대표에게 두 차례 입각을 제의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추 대표의 두 번째 정치적 위기는 2009년에 찾아왔다. 그는 제 18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한나라당 의원들과 단독으로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 조정법 개정안’(추미애 안)을 직권상정 후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민주노총 등 야권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지 않은 노동개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야권은 ‘여당과 날치기했다’며 환노위 위원장인 추 대표를 비판하고 2개월 당원 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렇게 친노 진영과 멀어졌던 추 대표는 2012년 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그는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도 문 전 대표를 위해 뛰면서 친문계로 분류됐다. 이에 문 전 대표도 추 대표를 지명직 최고위원에 선출하며 화답했다.
추 대표는 이번 당선을 통해 고 박순천 민중당 총재, 한명숙 전 총리(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에 이어 세 번째로 야권의 여성 대표가 됐다. 또 대구경북(TK) 출신 첫 여성 야권 대표로 이름을 남겼다.
정치권에서는 추 대표의 고난과 승리가 모두 소신 정치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때로는 욕을 먹을 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며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제 그의 과제는 주변의 우려처럼 ‘친문’ ‘주류’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 회고록 제목처럼 ‘물러서지 않는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그의 어깨에는 내년 대선에서 더민주의 집권을 견인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걸려 있다. 이를 위해 당내 대선 주자들이 경쟁할 공정한 룰을 만들어 신뢰할 만한 후보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강희경기자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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