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기억] 87년, 거리의 노동자들
1987년 울산은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의 거리였다. 처음으로 노동조합들이 결성되고 노동자들은 파업의 의미도 정확히 모른 채 거리로 나섰다. 그 선봉에 현대중공업이 자리했다.
그 해 7월 5일, 현대엔진이 현대그룹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이에 자극 받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대표 11인은 28일 현수막을 몰래 몸에 감고 출근해 근로자들을 모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8월 6일 황급히 울산에 내려온 정주영회장은 규모와 결의에 놀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수고가 많다. 나도 노조를 만들려면 세계 최고의 노조를 만들고 싶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막아 섰던 노동자들은 고발되거나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8월 17일 시작된 총파업은 9월까지 이어졌다. 25% 임금인상을 고집하던 노동자들은 17%로 요구를 수정했지만 사측의 답이 없자 오토바이 천 여대와 샌딩머신을 앞세우고 시청으로 돌진했다. 노동자와 경찰은 격하게 충돌했고 유리창이 부서지고 차량까지 불탄 시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9월 4일 새벽, 현대중공업에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됐고 노조간부와 대의원들이 모두 경찰에 연행되면서 긴 여름의 투쟁은 종료됐다. 이후 골리앗 투쟁 등을 거치며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타 직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 9월 2일 용접용 마스크와 중장비를 앞세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울산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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