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51ㆍ수감 중)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법정에서 2011년 자사 화장품의 군부대 납품을 위한 로비 명목으로 브로커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회사 매각으로 보유한 현금을 금고에 쌓아놓고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증언도 했다.
정 전 대표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 심리로 열린 브로커 한모(58)씨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 3차 공판에서 증인석에 앉아 금품과 향응 제공 사실을 인정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법정에 마스크를 낀 채 짙은 갈색 반팔 차림의 수의 차림으로 들어섰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정 전 대표는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증인석에 앉았다.
정 전 대표는 검사의 질문에 “국군복지단에 회사 상품을 납품하려고 한씨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그는 2011년 추석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한 호텔 주차장에서 5만원권으로 5,000만원을 담은 쇼핑백을 차 트렁크에서 꺼내 한씨에게 건넸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는 “한씨가 이용걸 전 방위사업청장과의 친분으로 박모 국군복지단장을 알게 됐는데 명절이니 박 단장에게 인사를 하자며 현금 5,0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뒷돈 마련 출처에 대해 “당시 회사(더페이스샵) 매각으로 2,00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며 “돈을 몇 억원씩 금고에 넣어놨었다”고 밝혔다.
이후 추석 1~2주 뒤쯤 정 전 대표는 한씨와 함께 박 단장을 만난 뒤 납품 담당 실무자와 면담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실제로 화장품을 군 부대 내 매점(PX)에 납품하는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 전 대표는 “위탁판매 등 계약 조건을 볼 때 수익성이 크다고 보이지 않았는데, 한씨가 20억원이나 요구해서 관뒀다”고 진술했다.
정 전 대표는 한때 마카오 여행을 같이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한씨와 날선 비방전을 법정에서 벌이기도 했다. 한씨가 정 전 대표를 향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하는데, 법정에선 모든 진실을 얘기하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꾸짖자 “난 사실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5,000만원을 준 건 명명백백하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정 전 대표는 “지난 2010년에 한씨에게 준 2억원은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다”며 “계좌에 (이체 내역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씨는 “그건 MB(이명박 전 대통령) 조카 김모씨를 소개해준다고 받은 거 아니냐”며 반박했다. 한씨는 억울하다는 듯 자신이 정리한 책 한 권 분량의 서류 뭉치를 내겠다고 호소했고, 재판장은 “참고는 하겠다”며 받았다. 이달 22일 한씨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최종적으로 듣고 재판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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