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1000만명이란, 문화적 정치적 ‘상징’
‘실미도’ 이후 1000만 영화 17편
권력ㆍ사회 부조리 이슈가 단골로
숫자 매개로 영화ㆍ정치 연결 시도
정치학자 정병기씨가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을 통해 한국 정치 지형을 분석했다. 왼쪽부터 ‘변호인’ ‘국제시장’ ‘고지전’ ‘베테랑’ ‘포화 속으로’ ‘암살’.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정병기 지음
갈무리 발행ㆍ352쪽ㆍ1만9,000원

한국 최초로 관객 1,000만명을 넘긴 영화는 2003년 12월 개봉한 영화 ‘실미도’다.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해운대’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등 2016년 3월까지 ‘천만 영화’는 17편에 이른다.

2012년 제18대 대선을 제외하면 1997년 제15대 대선 이후 역대 대선에서 1위 후보는 대개 1,000만을 조금 넘는 표를 얻었다. 정당 단일화로 2파전이 되지 않는 한, 즉 가능성 있는 제3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을 경우 1,000만 표는 당선 확정에 근접한 수치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1,000만이란 숫자의 의미를 다시 물을 만하다. 1,000만명이 한 사람을 택할 경우 정권이 바뀔 수 있다. 그럼 1,000만명이 하나의 영화를 택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하는 ‘생비자(prosumer)’ 개념이 가능하다면 영화 관람은 관객의 ‘소비’인 동시에 ‘표현’이다. 관객의 수가 1,000만명을 넘어갈 경우 표현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는 이를 “문화적 사건”이라고 부른다.

천만 영화를 통해 한국의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 책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가 출간됐다. 1,000만장의 영화 티켓을 1,000만장의 투표 용지로 직결시킬 순 없는 일이지만, 숫자의 힘을 매개로 영화와 정치를 연결하는 시도는 흥미롭다. 저자는 여기에 2005년 이후 1,000만 관객을 넘긴 한국 영화들이 대부분 권력과 관련된 내용을 다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 부조리에 대한 이슈를 다뤘음을 강조한다. 천만 영화를 통해 정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은 ‘변호인’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 ‘고지전’ ‘포화 속으로’ 등 총 6편을 다룬다. ‘고지전’과 ‘포화 속으로’는 1,000만을 넘기지 못했지만 전쟁과 남북관계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특별히 포함시켰다. 정치학의 영역으로 영화를 끌어 들일 때 가장 이슈가 될 만한 두 영화는 ‘국제시장’과 ‘변호인’이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찢어지게 가난한 모국을 위해 죽도록 일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변호인’은 1981년 부림사건과 노무현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다. 정치적 맥락에서만 보지 말아달라는 각 제작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 후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민주당 정치인들의 단체 관람으로 각각 한국 정치의 좌우를 상징하는 영화처럼 자리 잡았다.

저자는 ‘변호인’에서 누락된 민주주의의 다양한 층위를 지적하며 21세기의 한국이 여전히 “인권으로 포장된 정치적 민주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탈근대적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생산의 민주주의, 일상성의 민주주의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단단히 묶여 있어 어느 한 가지가 없어도 민주성이 훼손된다.( …)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민주주의의 층위들이 아직 상호 연결되지 못하고 제각각 추구되고 있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새로운 가치관에 따른 갈등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민주주의적 가치관의 하나로, 저자는 영화 속 남성주의적 시각을 꼬집는다. 70, 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궐기는 영화에서 박진우(박시완 분)의 연애사에 호들갑을 떠는 사춘기 여공들로 축소되고 왜곡된다. 이 같은 시각은 진보진영과 페미니즘 운동 간의 삐걱거림으로 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작동 중이다.

‘국제시장’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권 미화’라는 세간의 비판과는 달리 “‘국제시장’의 보수주의는 강력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무능한 국가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영화 속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국민에 반해 국가의 존재는 거의 삭제되다시피 했다. 국민은 국가에 기대지 않은 채 혼자 살아남고, 영화는 그 국민의 인내심과 자립심을 칭송한다. “‘국제시장’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 국가는 보편적 국가의 성격을 상실했다.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은 정부나 국가 차원의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의식과 노력에 달린 것으로 설정된다.”

이는 최근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와 세월호 참사에서 이어진 일련들의 ‘침묵들’과 겹친다. 국가는 “가만히 있으라”하고 대중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고통과 슬픔은 여전히 개인의 극복 과제다. ‘천만 영화’라는 권력이 탄생한 지 10년이 넘었다. 영화는 어디에 앵글을 맞춰야 할까.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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