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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얼이 지적하는 현대미술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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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얼이 지적하는 현대미술의 민낯

입력
2016.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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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추방자들

히토 슈타이얼 지음ㆍ김실비 옮김

워크룸프레스 발행ㆍ296쪽ㆍ1만5,000원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 ‘태양의 공장’(2015)은 영상 앞에 비스듬한 각도의 의자를 비치해 관객이 가상세계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저술가이자 작가로서 동시대 영감을 주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 ‘태양의 공장’(2015)은 영상 앞에 비스듬한 각도의 의자를 비치해 관객이 가상세계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저술가이자 작가로서 동시대 영감을 주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낙하를 상상해보자. 바닥이 없는 낙하를.”(자유낙하: 수직원근법에 대한 사고실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상작가이자 저술가 히토 슈타이얼은 독자가 생각지 못한 지점을 건드리는 것에서 글을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한다는 단어 ‘낙하’는 바닥과 결부돼야 할 논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사고해 왔고 그래서 파괴나 파국과 같은 결과를 떠올렸다. 히토 슈타이얼은 말한다. “낙하란 상대적이다. 즉 떨어지면서 가까이 다가올 바닥이 없다면 낙하를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선형원근법은 “자연스럽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이라 단정”되며 마치 “이미지의 평면이 ‘실제’ 세계로 열린 창인 것마냥” 우리의 근대를 형성했다. 화면 속 소실점은 바깥의 관찰자에게 위치를 할당했고, 개별성이나 주체성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양한 시점이 보충된 지금은 선형원근법이 예전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기 어렵다. 히토 슈타이얼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세상의 어디까지가 근본인가 묻는다. 미처 답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시 묻는다. 과연 근본은 있는가, 꼭 필요한가?

신간 ‘스크린의 추방자들(The Wretched of the Screen)’은 숨가쁘게 독자를 추궁하는 히토 슈타이얼의 주요 글 13편을 묶은 책이다. 2012년 나온 책을 4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ㆍ출간하며 2015년 발표한 두 편의 글도 추가로 실었다. 글은 20페이지 내외로 길지 않다.

대표작인 ‘가난한 이미지를 변호하며’도 실려 있다. 그는 ‘가난한 이미지’를 고화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허접스러운 불법 복제물”, “원본의 비합법적 5세대 사생아”, “현대의 스크린에서 추방된 존재” 등으로 수사하며 거의 분노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다 이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설에 주목한다. 가난한 이미지들은 공식적인 스크린에서 추방됐기에, 다수에,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강렬하게 닿을 수 있다. 원본과 가짜, 저항과 전유, 보호와 착취와 같은 고민이 떠돈다.

저자는 “열성껏 무급 노동하는 인턴들을 직원으로 둔, 문화 산업의 공식 대리점”으로 미술관을 논하고, 현대미술이 ‘답’이라면 그에 대한 질문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을까?”였을 거라 꼬집으며 현대미술의 작동방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파격적인 상상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엔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실을 전복한다.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이 산산조각 날지언정 슬프거나 늘어짐은 없다. 오히려 정면 돌파나 대안 모색을 촉구하며 강하게 전개된다. 작품, 글,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동시대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는 그의 힘은 여기에 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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