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케네스 로고프 '화폐의 종말'

100달러 등 고액권은 마약 밀매, 인신매매 등 범죄 활동을 숨기는 데 이용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화폐의 종말

케네스 로고프 지음ㆍ윤영미, 최재형 옮김

다른세상 발행ㆍ336쪽ㆍ1만6,000원

지난해 우리는 5만원권 지폐를 ‘비타 500박스’에 넣으면 최소 3,000만원은 들어간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결제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진 고액권은 비리 사건으로 그 쓰임새가 종종 오용된다. 마약 밀매와 인신 매매, 테러 활동에서도 고액권은 범죄활동을 용이하도록 돕는다. IS가 한 해 소비하는 돈이 10억 달러에서 20억 달러. 만약 미국의 최고액권이 100달러가 아니라 1달러였다면 어땠을까? 범죄 조직들은 늘어난 지폐의 양을 이동시키는 데 쩔쩔맸을 것이다.

‘화폐의 종말’ 저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래서 고액권부터 없애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연평균 약 1.3조 달러. 2016년 국내총생산(GDP) 18조 달러의 약 7%에 달한다. 이 엄청난 규모에 부과할 수 있는 연방세금을 추산한다면 미국은 연간 약 5,000억 달러의 세수를 더 얻을 수 있다. 현금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나열하면 이 책이 범죄백과사전이 될 것이라고 저자가 뼈있는 농담을 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지폐의 익명성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에 사로잡혀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카운터 펀치’가 나온다. 만성적인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고, 마이너스 금리가 실제로 적용되려면 지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연방준비위원회는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단행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침체된 경제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돈은 잔뜩 풀렸는데 소비 주체들은 돈만 움켜쥔 채 소비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추세만 굳어졌다.

저자는 이제 마이너스 금리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경기를 회복시키고, 장기 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때 마이너스 금리 도입의 정책적 목표에 실현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화폐의 종말’이다. 지폐를 없앤다는 예고가 있다면 사람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찰을 소비할 것이다. 즉, ‘화폐의 종말’은 마이너스 금리가 소비를 창출하고, 창출된 소비가 생산요소시장으로 다시 투입되어 공급과 투자를 촉진시키는 ‘선순환’의 마중물인 셈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꼼꼼한 저자는 치밀하게 반론을 준비해 두었다. 정부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마이너스 금리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해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저자는 ‘이미 우리의 중앙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008년 짐바브웨에서는 인플레이션율이 매년 2만4,000% 이상 상승했는데, 이 모든 ‘금융학살’은 마이너스 금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화폐의 종말’, 특히 고액권 지폐의 종말은 긴급히 논의되어야 할 공공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화폐는 결코 인류의 삶에서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결제, 가상화폐의 상용으로 화폐 없는 삶은 쉽게 목격된다. 종이화폐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화폐의 폐단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금리정책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화폐 없는 세계가 가져다 줄 보다 많은 이득에 대해서도.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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